경주 첨성대 구조 완전 해석: 365돌·27단에 숨겨진 신라 천문학과 우주관 (The History of Cheomseongdae)





하늘을 담은 정교한 설계도: 경주 첨성대 구조 해석 안내서


1. 1,300년 전 신라가 쏘아 올린 '하늘의 창'

우리는 흔히 경주 인왕동 평지에 고고하게 서 있는 첨성대(국보 제31호)를 마주하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는 수식어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9.17m의 석조 건축물이 1,3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버티며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한 '관측 기구' 그 이상입니다. 

첨성대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재위 632~647년)의 야망과 지혜, 그리고 우주의 질서를 땅 위에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철학이 응축된 '결정체'입니다.

당시 신라는 안팎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쉴 새 없이 국경을 압박해왔고, 내부적으로는 '여성 왕'이라는 이유로 통치 정당성을 끊임없이 공격받았습니다. 

특히 당나라 태종이 보낸 '향기 없는 모란꽃 그림' 일화는 유명합니다. 

꽃 주위에 나비가 없는 그림을 보낸 것은 여왕에게 배우자가 없음을 비꼬며 그녀의 권위를 부정하려는 외교적 결례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상대등 비담은 "여자 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며 반란(비담의 난)까지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선덕여왕이 선택한 정면 돌파구는 바로 '하늘'이었습니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 하늘의 움직임을 읽고 시간을 관장하는 능력은 곧 '천명(天命)'을 받은 자임을 증명하는 최고의 수단이었습니다.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시기를 정확히 알리는 실용적 필요성(농업적 중요성)은 물론, 일식이나 혜성의 출현 같은 천문 현상을 예측함으로써 여왕은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공고히 하고자 했습니다.

『삼국유사』 기이 제1편에는 "선덕여왕 대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짧은 문장이지만, 이는 신라가 독자적인 천문 관측 체계를 갖추었음을 시사하는 위대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신라인들이 왜 굳이 평지에 돌을 쌓아 하늘을 보려 했는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첨성대의 외형과 수치에 숨겨진 치밀한 설계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제 외형에 담긴 독특한 디자인 뒤에 숨겨진 동양 철학의 기초부터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경주 첨성대


2. 상원하방(上元下方)과 천원지방(天元地方): 형태에 담긴 우주관

첨성대를 처음 마주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호리병 형태입니다. 

이 독특한 실루엣은 단순히 심미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이는 고대 동양의 핵심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元地方)'을 건축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천원지방이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사상입니다. 

첨성대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 바닥 기단부는 네모난 사각형으로, 하늘을 향해 뻗은 몸통부는 둥근 원통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상징하며, 하늘과 땅이 만나는 접점으로서의 신성함을 부여합니다.

개념
형태
상징적 의미
인사이트
천원지방(天元地方)
원형(하늘) + 사각형(땅)
우주의 질서와 조화
고대인이 믿었던 하늘과 땅의 유기적 관계를 시각화함
상원하방(上元下方)
둥근 위쪽 + 각진 아래쪽
안정성과 천문학적 관측
구조적 견고함을 확보하는 동시에 하늘을 향한 종교적 경외감을 표현함


또한, '상원하방'의 구조는 지상에서의 안정성과 천상으로의 연결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아래쪽을 넓게 잡고 위를 좁게 만든 설계는 물리적으로 무게 중심을 낮추어 안정감을 줄 뿐만 아니라, 지상의 권위가 하늘의 도리를 따라야 한다는 정치 철학적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신라인들에게 첨성대는 우주의 축소판이었으며, 왕은 그 중심에서 우주의 섭리를 읽어내어 백성을 다스리는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형태적 완벽함은 단순히 겉모습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쌓아 올린 돌의 개수와 단수에는 치밀한 수학적 계산이 숨겨져 있습니다.


3. 암호화된 돌의 숫자: 365일의 시간을 쌓아 올리다

첨성대를 구성하는 돌 하나하나에는 1년의 주기와 우주의 운행을 담은 '수학적 암호'가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이를 분석해 보면 첨성대 자체가 거대한 '석조 달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365개의 몸통 돌: 첨성대의 몸통을 이루는 돌의 개수는 약 365개입니다. 

이는 태양력의 1년 일수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비록 측정 기준에 따라 362개에서 기단과 정자석을 포함할 경우 401개까지 다양하게 집계되기도 하지만(홍사준, 홍이섭 등 학자별 기준 차이), 365라는 숫자를 지향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는 매일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건축물에 투영한 결과입니다.

• 27단의 몸통: 원통형 몸통은 총 27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첨성대를 건립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을 상징하는 수치로, 여왕의 권위와 서사를 건축물에 직접적으로 각인한 것입니다.

• 28단(기단 포함): 지표면의 기단석을 포함하면 전체 층수는 28단이 됩니다. 

이는 동양 천문학에서 밤하늘을 구획하는 28개의 별자리인 '28수(宿)'를 의미합니다.

• 29단과 30단(정자석 포함): 맨 위 '우물 정(井)'자 모양의 정자석 2단을 합치면 29단 혹은 30단이 됩니다. 

이는 음력 한 달의 날수와 일치하여 달의 주기를 상징합니다.

• 창문 기준 상하 12단: 몸통 정중앙에 위치한 정사각형 창문을 기준으로 위로 12단, 아래로 12단이 정확히 대칭을 이룹니다. 

이는 1년 12개월과 24절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정교한 수치들은 첨성대가 단순히 우연히 쌓인 돌무더기가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설계도에 따라 구축된 과학적 조형물임을 증명합니다. 

이제 그 내부 구조로 들어가 관측자가 어떻게 이 공간을 활용했는지, 관측의 미학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첨성대의 구조


4. 내부 구조와 관측의 미학: 어떻게 별을 보았는가?

첨성대의 외부는 매끄럽고 우아하지만, 그 내부는 관측자의 치열한 수행과 과학적 기능성이 돋보이는 공간입니다. 

1,300년 전 관측자의 눈높이에서 내부 구조를 묘사해 보겠습니다.

관측자는 지상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제13~15단에 위치한 정사각형 창문에 도달합니다. 

한 변의 길이가 약 1m인 이 좁은 문은 첨성대의 유일한 출입구입니다. 


경주 첨성대(남쪽 개구부)


문 안으로 몸을 굽혀 들어가면, 발밑으로 차가운 자갈과 흙의 감촉이 느껴집니다. 

창문 아래쪽(11~12단)은 흙과 돌(채움재)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채움이 아니라,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전체 무게 중심을 아래로 집중시켜 지진에도 견디게 하는 내진 설계의 핵심입니다.

반면 창문 위쪽은 텅 비어 있습니다. 

관측자는 이제 어두운 내부에서 벽면에 돌출된 돌들을 발견합니다. 

이를 '비녀돌(돌출석)'이라 부르는데, 19~20단과 25~26단에 안팎을 가로질러 배치되어 있습니다. 

벽면은 외부와 달리 거친 질감의 자연석들이 불규칙하게 튀어나와 있어, 관측자는 이 비녀돌에 내부 사다리를 걸거나 지지대로 삼아 어둠을 뚫고 꼭대기를 향해 기어 올라갔을 것입니다.

마침내 도달한 정상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거대한 정자석(#)이 놓여 있습니다. 


경주 첨성대 상부


이곳은 한 변이 약 2.2m인 1.6평 남짓한 공간으로, 널빤지를 깔아 관측 기구를 설치하기에 충분한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밤하늘이 눈앞에 펼쳐지는 이 꼭대기에서 신라의 천문관은 '혼천의' 같은 기구를 사용하거나, 혹은 홍사준 학자의 주장처럼 바닥에 누워 중천의 별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특히 정자석의 사각형 틀은 관측자의 시야를 고정하고 별의 남중 시각을 측정하는 기준점 역할을 했습니다.

지상에서 보이는 우아한 자태는 땅속에 숨겨진 또 다른 신비로운 기술이 있었기에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첨성대 세부 구조


5. 땅 밑에 숨겨진 신라의 기술: GPR 탐사가 밝혀낸 진실

2019년, 첨성대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실시된 지하투과레이더(GPR) 탐사는 우리에게 놀라운 데이터를 선사했습니다. 

첨성대가 천년의 풍파와 2016년 경주 지진(규모 5.8)에도 무너지지 않은 비결은 바로 지표면 아래 정교한 기초 설계에 있었습니다.

GPR 탐사 결과 밝혀진 지하 구조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7x7m 방형 시설 (깊이 0.6m): 현재 우리가 보는 2단의 기단 아래에는 이보다 훨씬 거대한 가로 7m, 세로 7m의 정사각형 기초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는 1930년대 옛 사진에서도 확인되었던 층으로, 상부 구조물의 하중을 1차적으로 지지합니다.

• 11x12m 타원형 기초 (깊이 1.2~3m): 더 깊은 곳에서는 동서 11m, 남북 12m의 거대한 타원형 기초 시설이 확인되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지지 구조가 남측으로만 약 5m나 더 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반 침하를 방지하고 남측으로 쏠릴 수 있는 하중을 과학적으로 분산하려는 신라인들의 치밀한 설계입니다.

• 정면 4칸, 측면 3칸의 건물지 (깊이 0.7~1m): 첨성대 주변에서는 가로 15m, 세로 16m 규모의 건물지 반응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첨성대가 외롭게 서 있는 탑이 아니라, 이를 관리하고 기록을 남기던 부속 건물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천문 관측 컴플렉스'였음을 시사합니다.

• 12개의 물체 (깊이 0.4~0.6m): 남서쪽 지표면 아래에서 2m 간격으로 배치된 12개의 원형 물체가 발견되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원래 지름 15m의 원형 배치(총 24개 추정)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라 보고 있으며, 이는 첨성대를 성역화하거나 특별한 경계를 표시하던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15m지름의 원형 배치 평면 데이터


특이하게도 첨성대의 기단부는 진북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약 20도 회전되어 있는 반면, 주변 건물지 유구는 3도 가량만 틀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미세한 각도의 차이는 첨성대가 특정 별자리나 천문학적 관측 효율을 위해 의도적으로 방향을 설정했음을 암시하는 정밀 데이터입니다.

첨성대는 이토록 견고한 기초 위에 세워졌기에 세월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완벽한 건축물을 둘러싼 학계의 정체성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6. 첨성대를 둘러싼 세 가지 시선: 천문대인가, 제단인가?

첨성대의 용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고대 기록이 부족하여 여러 학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각 설의 논거를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구분
천문대설 (Observatory)
제단/종교 상징설 (Altar/Symbol)
규표/해시계설 (Gnomon)
주요 논거
상원하방 구조, 삼국유사 기록, 수치와 24절기의 일치
수미산 형상화, 협소한 내부, 여왕의 통치 정당성 과시
그림자 길이를 통한 동지/하지 및 절기 측정
핵심 증거
『세종실록』 "사람이 오르내리며 관측", 365개 돌 등 수치적 일치
불교적 도리천 신앙, 이용범 교수의 '수미산설', 계단 없는 불편함
전상운 교수의 '다목적 관측대' 론, 주변 표지석 배치
의미
고도로 발달한 신라의 실천적 과학 기술
종교를 통한 국가적 결속 및 여왕의 야망
농경에 필수적인 실용적 시간 측정 도구

• 천문대설: 와다 유지와 홍이섭 등은 『삼국유사』의 "돌을 다듬어 쌓았다"는 기록과 『세종실록』의 "안을 통해 오르내리며 관측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합니다. 

365개의 돌과 12단의 대칭 구조는 이 가설에 강력한 수학적 힘을 실어줍니다.

• 제단/종교 상징설: 이용범 교수는 첨성대가 불교의 우주관인 수미산을 형상화한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박성래 교수는 이를 '농업 신을 위한 제단'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관측자가 매일 오르내리기에는 내부 구조가 너무 거칠고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실질적인 관측보다는 상징적인 '우러러봄(瞻星)'의 장소였을 것이라 봅니다.

• 규표설: 전상운 전 교수는 첨성대가 거대한 해시계 바늘인 '규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주변에 깔려 있던 석재들이 그림자 길이를 재는 표지석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를 통해 동지와 하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절기를 맞추었다는 실용적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어떤 학설이 정답이든, 첨성대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하늘을 향한 신라인들의 꿈과 지혜,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과학 기술이 집약된 결정체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7. 미래를 비추는 천년의 유산

경주 첨성대는 1,3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풍파를 견디며 그 자리를 지켜온 국보 제31호입니다.

2016년 경주 대지진 당시, 상부 정자석이 미세하게 돌아가고 북쪽으로 1도 가량 더 기울어지는 변화가 있었지만, 첨성대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창문 아래를 가득 채운 흙과 자갈, 그리고 지하 3m까지 뻗은 견고한 타원형 기초가 빚어낸 '1,300년 전의 내진 설계'가 현대의 재난 앞에서도 그 위용을 입증한 것입니다.

오늘날 첨성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매년 정밀 안전 점검과 3D 스캔 탐사를 통해 그 보존 상태가 관리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와 함께하는 '밤하늘 관측 행사' 등이 열리며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다음에 경주를 방문하여 첨성대 앞에 서게 된다면,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돌 하나하나를 세어보시길 권합니다. 

몸통의 27단은 선덕여왕의 굴곡진 삶을, 365개의 돌은 우리 조상들이 매일같이 성실하게 살아온 하루하루를 상징합니다. 

남쪽 창문 너머로 신라인들이 보았을 그 별들이 지금 여러분의 머리 위에도 똑같이 떠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 첨성대는 비로소 '살아있는 역사'로 다가올 것입니다.

첨성대는 박제된 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하늘을 꿈꾸는 자에게 길을 안내하는 천년의 창입니다. 

신라인의 지혜가 담긴 이 거대한 설계도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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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국유사』, 『세종실록』, 고고학 조사 결과(GPR 탐사)와 현대 학계의 주요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다만 첨성대의 정확한 용도와 일부 수치·상징 해석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견해가 나뉘는 부분이 있으며, 본문에서는 이를 확정된 사실이 아닌 ‘유력한 해석’과 ‘가설’로 구분하여 서술했습니다.

본문 내용 중 오류가 있거나, 새로운 연구·자료·다른 해석을 알고 계신 분들은 댓글로 자유롭게 제보와 토론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공간이 일방적인 설명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는 살아 있는 역사 기록이 되기를 바랍니다.


Cheomseongdae, Korea’s oldest surviving stone observatory, is more than a simple astronomical structure. 

Built during the reign of Queen Seondeok of Silla in the 7th century, it reflects a sophisticated blend of science, philosophy, and political symbolism. 

Its square base and circular body embody the East Asian cosmology of “heaven round, earth square,” while its layered stone structure is often interpreted as encoding calendrical knowledge such as days, months, and celestial cycles.

Recent ground-penetrating radar surveys reveal that Cheomseongdae rests on a complex underground foundation designed for stability and seismic resistance, explaining its survival for over 1,300 years. 

Scholars continue to debate its precise function—whether it served as an observatory, ritual altar, or multi-purpose timekeeping device—but all agree it represents an advanced understanding of astronomy, engineering, and statecraft. 

Cheomseongdae stands today not as a static relic, but as a dynamic symbol of Silla’s intellectual ambition and its attempt to align earthly rule with cosmic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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