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를 향한 욕망과 배신: 고구려 산상왕 이야기
폭풍 전야, 후계자 없는 왕의 죽음
고구려 제9대 고국천왕 시대, 나라는 안팎의 위기를 극복하며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굴러갔습니다.
서기 197년, 단 하나의 후사도 남기지 못한 채 고국천왕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왕의 죽음은 고구려를 거대한 권력의 진공 상태로 밀어 넣었습니다.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에, 왕실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처럼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이 거대한 비극과 야망의 무대 중심에는 세 명의 인물이 서 있었습니다.
• 왕후 우씨: 죽은 왕의 아내이자, 고구려 5부 중 하나인 절노부 출신의 야심가. 아이 없는 왕비라는 불안한 지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만 했던 여인.
• 발기: 왕의 첫째 동생. 왕위는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 믿었지만, 역사의 무정함 앞에 분노에 휩싸일 인물.
• 연우: 왕의 둘째 동생. 훗날 산상왕이 되는, 형과는 다른 침착함으로 역사의 부름에 응답할 인물.
이들 외에도 또 다른 비운의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연우가 왕위에 오르기 전 꾸렸던 그의 아내와 자식들입니다.
이들의 존재는 곧 다가올 형제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 속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맙니다.
후계자 없는 왕의 죽음.
이는 한 여인의 생존을 위한 승부수와 두 형제의 엇갈린 운명이 맞물리며 시작될 거대한 드라마의 서막이었습니다.
1. 한밤의 밀회: 왕후 우씨의 대담하고 위험한 계략
고국천왕이 숨을 거두자, 왕후 우씨는 그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그녀는 왕의 죽음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왕의 죽음이 알려지는 순간, 절노부 출신의 후사 없는 왕비인 그녀의 정치적 생명은 끝이었습니다.
모든 권력을 잃고 역사 속으로 쓸쓸히 사라질 운명이었죠.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고구려에서 거의 잊혀가던 옛 풍습, 형사취수(兄死娶嫂)라는 위험천만한 카드를 꺼내 듭니다.
이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가문을 잇는 제도로, 그녀에게는 자신의 가문인 절노부와 함께 권력을 유지할 유일한 동아줄이었습니다.
그날 밤, 왕후는 첫 번째 목표인 첫째 시동생 발기를 찾아갔습니다.
왕의 죽음을 전혀 모르는 발기는 한밤중에 홀로 찾아온 형수의 모습에 당황하고 의심했습니다.
왕후 우씨: "대왕의 명입니다. 밤이 깊었으니, 저와 함께 침소에 드시지요."
발기: (경계하며) "남녀가 유별하고 예법이 엄한데, 어찌 이리 무례한 말씀을! 형님께서 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까?"
발기는 형인 고국천왕이 자신의 충성심을 떠보는 것이라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며 왕후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첫 번째 패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야심가 왕후 우씨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발걸음은 망설임 없이 다음 목표, 둘째 시동생 연우(훗날 산상왕)의 집으로 향했죠.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했습니다.
연우의 반응은 형과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형수를 정중하게 맞이하며 직접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손님을 위해 손수 고기를 썰던 연우는 그만 칼에 손을 베이고 맙니다.
촛불이 흔들리는 긴장된 공간, 피가 배어 나오는 그의 손을 본 왕후 우씨는 다가가 자신의 치맛자락을 찢어 그의 손을 감싸주며 직접 상처를 치료해주었습니다.
연우: "형수님, 이 밤중에 어인 행차십니까. 누추하지만 잠시 쉬어가시지요."
왕후 우씨: (연우의 다친 손을 보며) "어찌 이리 부주의하십니까. 이리 주십시오. 제가 돌봐드리겠습니다."
다친 손을 감싸주는 부드러운 손길은 단순한 치료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왕후 우씨가 연우에게 보내는 강력한 정치적 동맹의 신호였고, 고구려의 운명을 건 밀약의 상징이었습니다.
연우는 왕후의 진짜 의도를 꿰뚫어 보았고, 그녀가 내민 위험하지만 달콤한 손을 기꺼이 잡았습니다.
한 여인의 대담한 선택은 이제 고구려의 운명을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2. 엇갈린 형제의 운명: 새로운 왕의 즉위와 핏빛 반란
다음 날 아침, 왕후 우씨는 고국천왕의 유언이라며 연우를 새로운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왕실 계루부와 왕후의 가문 절노부가 손을 잡은 정치적 결단이었습니다.
이렇게 연우는 왕후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고구려 제10대 산상왕(山上王)으로 즉위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은 형 발기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습니다.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삼고 왕위까지 차지했다는 사실에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에 휩싸였습니다.
왕위를 빼앗긴 발기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 세력이자, 이번 왕위 계승에서 철저히 소외된 소노부를 등에 업고 반란의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형제간의 다툼이 아니라, 왕실 계루부와 절노부 연합 세력에 맞선 소노부의 거대한 반격, 즉 고구려를 둘로 쪼개는 내전의 시작이었습니다.
발기는 "왕위는 마땅히 형인 내 것이거늘, 어찌 동생 연우가 형수를 취하고 왕위를 찬탈할 수 있는가!"라며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반란군은 삽시간에 수도를 포위하고 왕궁을 맹렬히 공격했습니다.
새로 즉위한 산상왕은 즉위하자마자 형이 이끄는 칼날과 마주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발기의 반란은 다른 귀족 세력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복수심에 눈이 먼 발기는 패배하여 도망치는 과정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는 산상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두었던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추정)
이 충격적인 사건은 산상왕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는 한순간에 가족을 모두 잃고 10년이 넘는 세월을 후사 없이 고통 속에 보내야 했습니다.
왕궁 안의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모든 것을 잃은 발기의 복수심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나라 밖의 더 큰 세력을 끌어들여서라도 동생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더 큰 비극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3. 외세를 끌어들인 비극: 형제의 마지막 혈투
반란에 실패한 발기는 요동으로 도망쳤습니다.
당시 요동 지역은 한나라의 통제가 약해진 틈을 타 공손씨 세력이 국가에 버금가는 독자적인 힘을 구축하고 있던 곳입니다.
이들은 고구려의 성장을 견제하던 가장 강력한 지정학적 라이벌이었습니다.
개인의 복수심에 눈이 먼 발기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맙니다.
그는 자신의 조국이자 고구려의 주적이었던 공손씨에게 군사를 요청하여 나라의 심장을 향해 칼을 겨누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명백한 반역 행위였습니다.
발기가 길을 안내한 요동군은 거침없이 고구려의 수도를 공격해왔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산상왕은 막내 동생인 고계수에게 군사를 맡겨 형의 반란을 막도록 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립니다.
동생이 형을 막아야 하는 비극적인 전투가 시작된 것입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계수가 이끄는 고구려군은 발기의 요동군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패배한 형을 추격하던 계수는 차마 형을 해치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고계수: "형님! 한때의 분함을 참지 못해 조국의 산하를 외적의 발굽 아래 짓밟히게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돌아가신 후에 무슨 면목으로 조상님들을 뵙겠습니까?"
동생의 질타에 발기는 모든 희망을 잃었습니다.
왕위도, 복수도 모두 실패한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형제의 피로 얼룩진 이 반란은 결과적으로 산상왕의 왕권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란의 중심이었던 소노부 세력은 완전히 궤멸되었고, 이는 왕실 계루부의 강력한 경쟁 세력이 사라졌음을 의미했습니다.
외세를 끌어들인 발기의 행위는 역설적으로 산상왕의 즉위에 정당성을 더해주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형제의 난은 이렇게 끝났지만, 왕에게는 처자식을 모두 잃고 끊어진 대를 이어야 하는 또 다른 중대한 과제가 남아있었습니다.
4. 사라진 돼지와 운명적 만남: 새로운 후계자의 등장
형 발기와의 비극적인 싸움으로 한순간에 처자식을 모두 잃은 산상왕.
그는 왕후 우씨에게서도 아이를 얻지 못해 후계 문제로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왕실의 대가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넘어, 잔인하게 살해당한 가족을 잃은 한 인간의 깊은 슬픔이기도 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제발 아들 갖게 해주세요"라고 산천에 간절히 기도를 올릴 정도로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요?
어느 날, 기이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나라의 제사에 쓰일 돼지가 갑자기 우리를 뛰쳐나가 멀리 달아나 버린 것입니다.
제사를 담당하던 관리가 돼지를 쫓아 도착한 곳은 '주통촌'이라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모든 이가 돼지를 잡지 못해 쩔쩔매던 바로 그때, 스무 살 남짓한 지혜로운 처녀가 나타나 떡으로 돼지를 유인해 단숨에 붙잡았습니다.
이 신기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산상왕은 이것이 운명이라 직감했습니다.
그는 남몰래 그녀를 찾아갔고, 왕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처녀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왕의 오랜 고뇌를 해결해 줄 한 줄기 빛이, 바로 이 기적 같은 만남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달아난 돼지 한 마리가 만들어 낸 이 우연은 끊어질 뻔했던 고구려 왕실의 대를 잇는 운명적인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5. 왕후의 질투와 후사의 탄생
얼마 후, 주통촌 처녀가 왕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이 왕후 우씨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의 등장에 왕후는 불같은 질투와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그녀는 즉시 군사를 보내 처녀를 죽이려 했습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처녀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군사들을 향해 당차게 외쳤습니다.
"내 뱃속에는 폐하의 아기씨가 있소. 나를 죽이면 당신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그녀의 당당한 기세에 군사들은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산상왕은 더 이상 그녀를 궁 밖에 둘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산상왕의 노력으로 처녀는 마침내 궁에 들어와 '소후(小后, 작은 왕후)'의 지위를 얻었고, 곧이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산상왕은 이 운명적인 만남을 잊지 않고 아들의 이름을 '교체(郊彘)'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들에서 잡은 돼지'라는 뜻으로,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준 그날의 사건을 기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훗날 고구려의 제11대 왕이 되는 동천왕입니다.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후계자를 얻었지만, 산상왕의 업적은 단순히 왕실의 대를 이은 것 이상이었습니다.
왕위 상속 문제를 해결하고 태평성대를 꿈꾸던 산상왕.
하지만 즉위 24년 여름, 고요하던 왕궁 뜰에 정체 모를 새들이 떼 지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이한 울음소리가 궁궐을 뒤덮자 신료들은 얼굴을 붉히며 수군거렸습니다.
이것은 대대적인 왕권 강화에 대한 하늘의 축복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피바람을 예고하는 저주일까요?
아들이 없던 왕후 우씨는 결국 소후(小后)의 자식인 동천왕을 양자로 삼아 자신의 지위를 지켜냈습니다.
그녀는 고구려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두 명의 왕(고국천왕, 산상왕)과 혼인한 왕후라는 기록을 남겼죠.
서기 227년, 산상왕이 세상을 떠나고 동천왕이 즉위하자 그녀는 태후가 되어 권력의 정점에 섰습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그녀도 한 명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유언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내가 살아생전 지은 죄가 많으니, 차마 지하에서 고국천왕(전 남편)을 뵐 면목이 없구나. 나를 산상왕(현 남편)의 곁에 묻어다오."
그녀가 말한 '죄'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권력을 향한 집착이었을까요, 아니면 형사취수라는 명분 뒤에 숨겼던 자신의 욕망이었을까요.
결국 그녀는 산상왕의 능 옆에 묻혔고, 기록에 따르면 고국천왕의 묘에서는 그녀의 배신에 분노한 귀신이 나타나 통곡했다는 기이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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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상왕릉으로 추정 |
6. 혼란을 넘어 왕권을 세우다: 산상왕의 재평가
산상왕의 즉위 과정은 형제의 피와 배신으로 얼룩져 소란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구려의 미래를 바꾼 중요한 업적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는 혼란을 딛고 일어나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의 기틀을 새로 다진 실속 있는 군주였습니다.
산상왕은 내부 단속뿐만 아니라 외교에서도 치밀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조조(삼국지의 조조)의 아들 조비가 세운 위(魏)나라가 세력을 확장하던 혼란기였습니다.
실리 외교: 산상왕은 요동의 공손씨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멀리 있는 위나라와 손을 잡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을 펼쳤습니다.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는 척하면서도, 뒤로는 요동의 정세를 살피며 고구려의 영토를 보전했습니다.
국방 강화: 형 발기가 외세를 끌어들였던 아픈 기억을 되살려, 국경 수비를 강화하고 철기병 중심의 군사력을 육성했습니다.
이는 훗날 아들 동천왕 시대에 고구려가 요동을 호령하는 거대한 국가로 성장하는 체질 개선의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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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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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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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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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성 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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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귀족 세력의 중심지(국내성)에서 벗어나, 방어에 유리한 새로운
요새형 도성인 환도성을 쌓고 수도 기능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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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기득권 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는 결정적인
'빅 이벤트'였음. 평시의 평지성과 전시의 산성을 함께 운영하는
고구려 특유의 도성 체계를 확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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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상속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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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난과 후사 문제를 겪으며, 끊임없는 피바람을 몰고 왔던 형제
상속의 고리를 끊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부자 상속의 전통을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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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 계승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왕실 중심의 중앙 집권 국가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함. 이는 고구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정치적 발전 중 하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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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왕의 삶은 즉위 과정의 논란과 형제간의 비극, 치정 문제 등 자극적인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 뒤에는 기존 귀족 세력을 누르고 수도를 옮기는 과감한 결단력, 그리고 형제 상속이라는 불안정한 고리를 끊고 부자 상속을 관철시킨 뛰어난 정치적 감각이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소란스러운 시대를 살았던 왕이 아니라, 고구려의 면모를 일신하고 강력한 왕권 국가로 나아가는 기틀을 마련한, 상당히 실속 있는 군주로 재평가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 글은 『삼국사기』 등 공개 사료를 바탕으로 산상왕(山上王) 즉위 전후의 권력 투쟁과 왕권 강화 과정을 정리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 구성·심리 묘사·대화 일부를 소설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사실로 확정하기 어려운 전언은 (전승),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논쟁)으로 표시했습니다.
또한 5부·인물 관계·연대는 사료 판본과 연구에 따라 표현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핵심 사건의 흐름을 중심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After King Gogukcheon died in 197 without an heir, Goguryeo faced a dangerous power vacuum.
Queen U moved quickly, hiding the king’s death and invoking the custom of marrying a deceased king’s widow to a brother, hoping to preserve her position and her faction’s influence.
She first approached Balgi, the elder brother, but he refused. She then turned to Yeonu, the younger brother, who accepted the pact and was proclaimed King Sansang.
Enraged, Balgi rallied supporters and rebelled, then fled to Liaodong and sought aid from the Gongsun warlords, inviting foreign forces into a civil struggle.
Sansang’s side ultimately crushed the uprising, and Balgi met a tragic end.
Yet the victory left Sansang haunted by loss and anxious about succession.
A later folk episode—chasing a ritual pig to Jutong village—led to his meeting a young woman who bore him a son, later King Dongcheon.
With succession secured, Sansang consolidated royal authority through fortress building and a strategic move of the capital, helping reshape Goguryeo into a more centralized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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