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2025 북중러 관계 총정리: 푸틴의 복수와 김정은의 '양다리 외교' 실체 (North Korea–China–Russia diplomatic relations)


흔들리는 동북아: 1950년부터 현재까지 북·중·러 삼각관계의 대서사시


머리말: 왜 우리는 북·중·러 관계를 이야기해야 하는가

동북아시아의 안보 지형을 이야기할 때, 북한, 중국, 러시아 세 국가는 그 중심에서 역동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역사의 흐름을 주도해 온 핵심 행위자들입니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우방이나 협력이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띠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념을 공유한 혈맹으로, 때로는 각자의 이익을 좇는 경쟁자로, 그리고 때로는 공동의 위협에 맞서는 전략적 동반자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어 왔습니다.

최근 이들 3국의 관계는 단순한 협력을 넘어 질적인 구조 변화가 일어나는 ‘전략적 재편’의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나아가 세계 질서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1950년대 냉전의 서막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삼각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해왔는지 그 거대한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격변하는 국제 정세를 읽는 필수적인 열쇠가 될 것입니다. 

이 글은 그 복잡하고 장대한 역사를 따라가는 충실한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1부: 혈맹과 동지, 냉전 시대의 삼각관계 형성 (1950년대 ~ 1980년대)

1.1. 전쟁의 불길 속에서 맺어진 인연: 6.25 전쟁과 북·중·러 관계의 기원

북·중·러 삼각관계의 기원은 1950년대 6.25 전쟁의 포화 속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들의 관계를 묶어준 최초의 끈은 다음의 세 가지였습니다.


1. 지리적 인접성: 국경을 맞댄 세 나라는 서로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웃이었습니다.

2. 공산주의 이념 공유: 사회주의라는 공동의 이념은 이들을 하나의 진영으로 묶는 강력한 명분이었습니다.

3. 공동의 외부 위협 인식: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에 대한 공동의 경계심은 이들의 결속을 다지는 접착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의 결속은 단순한 종이 위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의 포화가 터지기 훨씬 이전, 이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만주의 칼바람과 일제의 총칼에 맞선 '공동의 기억'이었습니다.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의 권력 핵심부와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들은 1930년대 동북항일연군(만주 지역 항일 유격대)의 이름으로 함께 피를 흘렸던 혁명 동지들이었습니다.

또한, 김일성은 소련군 제88독립보병여단(소련군 소속 항일 부대)에 소속되어 소련식 군사 교육과 이념을 체득했습니다. 

즉, 북·중·러의 삼각관계는 국가 탄생 이전부터 '항일'과 '혁명'이라는 공통분모로 맺어진 혈연적 유대감을 뿌리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정서적 뿌리는 훗날 국가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위기 속에서도, 삼각관계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형성된 삼각관계 속에서, 당시 소련과 중국은 신생 국가 북한의 생존을 책임지는 ‘이중 축(Dual Axis)’ 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북한은 양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외교 전략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형성된 관계는 이후 수십 년간 동북아 냉전 구도의 근간을 이루게 됩니다.


1.2. 두 거인 사이의 줄타기: 북한의 등거리 외교

냉전이 심화되면서 공산주의 진영의 두 거인, 소련과 중국 사이에는 미묘한 균열(중·소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북한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국 모두로부터 지원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북한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교한 줄타기 외교를 펼쳤습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소련이 서방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수정주의'(어원: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근본 원칙을 변질시켰다는 비판에서 유래) 노선을 걷자, 북한은 이를 혁명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군사적·경제적 지원이 절실했던 북한은 비판과 협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이는 냉전기 북한 외교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제국주의와 소련 수정주의를 타도하자!


진보도 사건: 피로 맺은 혈맹이 총을 겨누다

냉전의 동지들이 서로의 심장에 칼을 겨누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1969년 3월, 얼어붙은 우수리강(Ussuri River) 위 작은 섬 진보도(珍寶島)에서 소련과 중국의 국경 수비대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이념의 형제였던 두 나라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양국은 서로를 향해 핵전쟁까지 언급하며 으르렁거렸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북한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습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사회주의 혈맹'이 국익 앞에서는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은 결심했습니다.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몸을 싣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바로 북한이 소련의 눈치를 보면서도 중국의 손을 놓지 않고, 동시에 '주체(Juche)'라는 독자 노선을 강화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9년 5월 6일 우수리강에서 중국 어선에 물대포를 분사하는 소련 함정의 모습


거인들의 셈법: 소련과 중국은 서로를, 그리고 북한을 어떻게 보았나

냉전기 북·중·러 관계는 겉으로는 '사회주의 혈맹'이었지만, 안으로는 '주도권 다툼'과 '동상이몽'이 가득한 체스판과 같았습니다.


① 소련(러시아)의 입장: "우리가 큰형님, 북한은 전방 초소"

소련에 북한은 단순히 이념을 공유하는 동생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일본과 남한을 견제하기 위한 '동북아시아의 최전방 방어벽'이었습니다.


대(對) 북한 전략: 소련은 북한에 최첨단 무기와 경제 원조를 제공하며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이 지나치게 독자적인 노선을 걷거나 중국과 밀착하는 것은 경계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무력 도발을 일으켜 소련이 미국과 원치 않는 전면전에 휘말리는 상황(연루의 위험)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대(對) 중국 전략: 흐루쇼프(소련 지도자) 시기부터 소련은 중국을 '교조주의적이고 위험한 경쟁자'로 보았습니다. 

사회주의권의 유일한 맹주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북한이 중국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경제적·군사적 '당근'을 끊임없이 던지며 관리했습니다.


② 중국의 입장: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순망치한)"

중국에게 북한은 자국의 안보를 보장하는 '완충지대(Buffer Zone)'였습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아주는 방패였죠.


대(對) 북한 전략: 6.25 전쟁에 참전해 막대한 피를 흘린 중국은 북한과 '혈맹(Blood Alliance)'임을 강조했습니다. 

소련이 북한을 '전략적 요충지'로 보았다면, 중국은 북한을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정권이 흔들리는 것을 결코 좌시할 수 없었으며, 소련보다 경제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식량과 자원을 아낌없이 지원하며 북한 내 중국의 지분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대(對) 러시아(소련) 전략: 마오쩌둥(중국 지도자)은 소련의 '수정주의'를 비판하며 사회주의의 진정한 적통이 중국에 있음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소련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사회주의 제국주의'라며 극도로 경계했고, 북한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소련을 고립시키려는 외교전을 펼쳤습니다.


냉전 시대의 북·중·러 관계는 이념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연대였지만, 그 내부에는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미묘한 긴장감도 존재했습니다.


2부: 탈냉전의 격랑과 새로운 질서 (1990년대 ~ 2010년대)

2.1. 한 축의 붕괴와 중국의 부상

1990년, 소련의 붕괴는 북·중·러 삼각관계에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북한의 생존을 뒷받침하던 ‘이중 축’ 중 하나가 무너지면서 러시아의 위상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북한은 심각한 외교적 고립 상태에 빠졌습니다.

바로 이 시기, 중국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이끈 개혁·개방 정책의 성공을 발판 삼아 경이로운 경제 성장을 이룩한 중국은 점차 동북아의 경제적, 전략적 맹주로 떠올랐습니다. 

탈냉전 이후 삼각관계의 무게추는 압도적으로 중국에게 쏠리기 시작했으며, 관계의 위계 구조는 중국 중심의 비대칭적 형태로 재편되었습니다.


배신과 충격: 90년대, 깨져버린 혈맹의 환상

소련의 붕괴 직후, 북한은 믿었던 동맹국들에게 잇따라 '외교적 뒷통수'를 맞으며 극한의 고립으로 내몰립니다. 

이 사건들은 현재의 북·중·러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한·소 수교(1990년)와 한·중 수교(1992년): 북한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혈맹'이라 믿었던 러시아(소련)와 중국이 경제적 실리를 위해 북한의 주적인 한국과 손을 잡은 것입니다.


북한의 반응: 당시 북한은 중국을 향해 "의리 없는 배신자"라며 격렬히 비난했고, 한동안 북·중 관계는 냉각기에 접어듭니다.


러시아의 '상호원조조항' 폐기: 1996년, 러시아는 북한과 맺었던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공식 폐기합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안보의 거대한 기둥 하나가 완전히 뽑혀 나간 사건이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중국 의존이라는 외통수

러시아가 떠난 빈자리는 차갑고 가혹했습니다.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함께 러시아는 북한에 제공하던 '우대 가격'의 에너지와 식량 지원을 단칼에 잘라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닥친 대홍수와 가뭄은 북한을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기근의 지옥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수십만 명이 굶주림으로 쓰러져 나갔습니다.


이때 북한의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준 것은 중국이었습니다. 

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가 자국 국경의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략적 지원'을 유지했습니다. 

압록강을 건너오는 식량과 원유는 북한 정권의 생명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었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북한 경제의 대중국 의존도는 90%를 상회하게 되었고, 삼각관계의 무게추는 중국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며 비대칭적 종속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


북한의 도박: '핵'이라는 위험한 생존법

기댈 곳이 사라진 북한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핵 개발'에 사활을 겁니다. 

이는 삼각관계에 새로운 갈등 요소를 던집니다.


1~2차 핵실험과 중국의 딜레마: 2006년, 2009년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을 당혹게 했습니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는 원치 않았지만, 동시에 한반도가 불안해져 미국의 군사력이 동북아에 증강되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6자 회담: 해결사 중국과 소외된 러시아

2000년대 동북아 외교 무대의 주인공은 단연 중국이었습니다. 

북한이 핵 카드를 꺼내 들며 판을 흔들자, 중국은 '6자 회담(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 회담)'이라는 판을 깔고 의장국을 자처했습니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재자'로서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했습니다.


반면, 한때 북한의 창조주였던 러시아는 변방으로 밀려났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극동 지역의 영향력을 회복하려 애썼지만, 경제력을 앞세운 중국의 기세에 눌려 회담장 구석에서 조연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러시아는 이때의 소외감을 잊지 않았습니다. 

국제 질서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어 했던 러시아의 갈증은, 훗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과 손을 잡으며 판 전체를 엎어버리는 '복수극'의 불씨가 됩니다.


푸틴의 귀환과 김정은의 등장 (2010년대 초반)

지지부진하던 관계에 새로운 활력이 돈 것은 지도자들의 교체 시기였습니다.


푸틴의 '신동방정책': 2012년 재집권한 푸틴은 "러시아의 미래는 아시아에 있다"며 극동 개발을 강조합니다. 

이때 러시아는 북한의 채무 90%를 탕감해주며 다시 북한에 손을 내밉니다. 

중국 독주 체제에 미묘한 균열이 가기 시작한 지점입니다.


장성택 처형(2013)과 북·중 관계의 경색: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후 '친중파'의 상징이었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자, 시진핑 주석은 큰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몇 년간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최악이었습니다.


2.2. 현상 유지와 전략적 조정

2010년대 후반까지 북·중·러 관계는 중국의 주도 아래 ‘현상 유지’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약화된 러시아와 고립된 북한은 중국의 구조적 주도성을 수정하려 시도하기도 했지만, 중국의 막강한 경제적 우위와 전략적 조정 능력은 삼각관계의 재편을 억제하는 힘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협력을 다시 활성화시킨 것은 외부의 압박이었습니다. 

2018-2019년,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대북 압박 정책은 북한, 중국, 러시아 세 나라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외부 위협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세 나라의 협력 패턴이 오히려 강화되는 결과가 나타났고, 이는 외부의 위협이 이들의 관계를 다시 묶어주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탈냉전 이후 중국 중심의 비대칭적 관계로 재편되었던 북·중·러 관계는 외부의 압박 속에서 느슨한 연대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2022년,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 이 관계의 구조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3부: 새로운 밀월, 신냉전 구도의 심화 (2022년 ~ 현재)

3.1. 결정적 계기: 우크라이나 전쟁의 나비효과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북·중·러 삼각관계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거대한 분기점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 세계의 전례 없이 강력한 제재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는 수십 년간 국제적 고립과 제재에 시달려 온 북한과 매우 유사한 국제적 환경에 처하게 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제재’라는 공통의 족쇄를 차게 된 북한과 러시아는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전쟁 장기화로 무기 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와, 제재 체제를 무력화하고 첨단 군사 기술을 확보하려던 북한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양국 간 협력의 필요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 사건은 삼각관계의 위계와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구조적 전환’의 서막이었습니다.


3.2. 급진전하는 북·러 관계: 주요 사건 타임라인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은 전례 없는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2022년 하반기, 북한의 러시아 포탄 지원 

장기화되는 전쟁으로 재래식 무기 재고가 부족해진 러시아에 북한이 수백만 발의 포탄과 단거리 로켓을 제공하면서 양국 군사 협력의 물꼬를 텄습니다.

• 2023년 7월,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방북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평양에서 열린 ‘무장장비 전시회’를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참관했습니다. 

이는 양국이 군사 협력을 최고위급에서 공개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대외에 과시한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 2023년 9월,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 극동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회담 장소가 우주기지였다는 점은 단순한 재래식 무기 거래를 넘어, 러시아의 인공위성, 로켓, 원자력 잠수함 등 첨단 기술이 북한에 이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며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 2024년 3월, 러시아의 UN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 거부권 행사 

러시아는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위반을 감시하는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국제 사회의 공식적인 대북 제재 체제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로, 북한에게는 제재의 족쇄를 풀어주는 ‘외교적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 2024년 6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역사는 기묘한 방식으로 되풀이되었습니다. 

평양에서 김정은과 푸틴이 서명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은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습니다. 

특히 "전쟁 상태에 처하면 지체 없이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는 조항은 사실 1961년 김일성과 흐루쇼프가 맺었던 조약의 완벽한 부활이었습니다.

냉전 시대의 유물인 '자동 군사개입'이 63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21세기에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협력을 넘어, 북한과 러시아가 사실상 '전시 동맹' 수준으로 돌아갔음을 선언한 사건입니다. 

북한은 다시금 러시아라는 뒷배를 얻었고, 러시아는 동북아에 강력한 발언권을 확보하며 중국이 주도하던 삼각관계의 균형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2024년 6월 새로운 협력 관계 체결 서명식에서 푸틴과 김정은이 문서를 교환하고 있다.


3.3. 변화된 삼각관계 분석: 무엇이 달라졌는가?

북·러 밀착 이후 삼각관계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교 항목
과거의 삼각관계 (탈냉전 ~ 2022년)
현재의 삼각관계 (2022년 이후)
핵심 동력
중국의 경제적 우위와 전략적 조정 능력
서방 제재에 대한 공동 대응 필요성 (특히 북·러 간 군사적 필요성)
위계 구조
중국 중심의 명백한 비대칭적·수직적 구조
3국 간 위계 이동과 재조정, 느슨한 수평적 구조로의 변화 가능성
중국의 역할
관계를 주도하는 '리더(Leader)'
북·러 밀착을 관리하는 '전략적 완충자' 또는 '조정자'
북한의 위상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가진 고립된 행위자
러시아와의 협력을 지렛대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한 핵심 행위자


이처럼 북·중·러 삼각관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 국가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각자의 셈법은 무엇일까요? 

각국의 시선으로 관계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4부: 세 나라의 동상이몽(同床異夢): 각국의 시선과 전략

새로운 밀월 관계처럼 보이는 북·중·러 삼각관계의 이면에는 각자의 전략적 목표와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4.1. 북한의 시선: "중국의 그늘을 벗어나, 판을 흔드는 주역이 되다"

북한에게 러시아와의 밀착은 생존을 넘어선 '신의 한 수'입니다. 

그들이 노리는 구체적인 실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중국 독점'의 종말: 몸값을 올리는 양다리 외교

그동안 북한은 싫든 좋든 중국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식량과 원유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눈치를 보며 "제발 도와달라"고 읍소하던 처지였죠. 

하지만 러시아라는 강력한 '대안'이 생기면서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이제 북한은 중국이 압박을 가하면 러시아 밀착 카드로 응수하고, 러시아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 중국을 언급하며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겐 러시아라는 시장도, 주유소도 있다."는 자신감이 중국을 향한 당당한 태도로 이어진 것입니다.


② '핵 보유국' 공식 승인을 향한 지름길

중국은 북한의 붕괴는 막아주지만, 북한의 핵 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에는 인색했습니다. 

핵 때문에 미군이 동북아에 더 몰려드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전쟁이 급한 러시아는 다릅니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재진입 기술, 원자력 잠수함, 정찰위성 등 핵심 기술을 넘겨줄 유일한 국가입니다. 

북한 입장에서 러시아는 단순한 경제 지원국이 아니라, 자신들을 '천하무적의 핵 강대국'으로 완성해 줄 최후의 퍼즐 조각인 셈입니다.


③ 제재의 늪에서 탈출: "유엔은 더 이상 무섭지 않다"

과거 북한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유엔 안보리의 촘촘한 경제 제재였습니다. 

중국조차 미국의 눈치를 보며 제재에 동참하는 시늉을 해야 했죠. 

하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대북 제재 감시 기구(전문가 패널)의 목을 쳐버리고, 대놓고 무기를 거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라는 거대한 '제재의 구멍'이 뚫리면서 북한은 국제 사회의 압박을 비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 질서가 무너질수록 북한의 생존 공간은 넓어진다"는 역설적인 승리감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4.2. 러시아의 시선: "동방의 무기고를 열어 서방의 심장을 겨누다"

러시아에게 북한과의 밀착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도박'에 가깝습니다.


① 전쟁의 엔진을 돌리는 '거대한 병기창'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모전 양상으로 흐르면서, 러시아의 가장 큰 고민은 '포탄 부족'이었습니다. 

첨단 미사일보다 당장 전선을 밀어붙일 수백만 발의 재래식 포탄이 절실했죠. 

이때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재래식 무기 창고를 열어주었습니다. 

북한산 122mm, 152mm 포탄과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러시아 군의 화력을 보충하는 핵심 자산이 되었습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줄 때, 우리는 북한이라는 거대한 병기창을 손에 넣었다"는 계산이 선 것입니다.


② 미국의 뒷마당을 흔드는 '제2의 전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미국의 시선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북한이 동해상에서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수록, 미국의 전략 자산과 외교적 에너지는 유럽(우크라이나)에서 아시아로 분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는 북한에 첨단 군사 기술(위성, 잠수함 등)을 제공하겠다는 암시를 줌으로써 미국을 압박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우리를 괴롭히면, 우리는 한반도에서 너희를 괴롭힐 무기를 북한에 주겠다"는 고도의 외교적 보복 전략입니다.


③ 신세계 질서(Multipolar World)의 파트너

푸틴은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무너뜨리고 다극화된 세계를 꿈꿉니다. 

이를 위해선 서방의 제재를 비웃고 독자적인 길을 가는 국가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미(反美) 성향을 가진 국가이자, 유엔의 제재를 수십 년간 버텨온 '생존 전문가'입니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결속을 통해 "미국의 허락 없이도 우리는 우리만의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증명해 보이려 합니다.


"제재받는 국가들의 결속"은 러시아가 추구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중요한 축이 되었습니다.


4.3. 중국의 시선: '전략적 완충자'의 딜레마

북·러 밀착을 바라보는 중국의 입장은 매우 복잡합니다.

• (긍정적 측면) 반미 연대 강화: 미국에 맞서는 공동 전선이 강해지는 것은 미·중 전략 경쟁 구도에서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 (부정적 측면) 통제 불능의 변수: 하지만 북한이 통제 불가능한 행동으로 역내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거나, 북·러 관계가 지나치게 가까워져 북한에 대한 자국의 독점적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은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적 압박’ 속에서 중국의 역할은 과거처럼 관계를 주도하는 ‘리더’가 아닌, 북·러 관계의 속도를 조절하고 역내 안정을 관리하는 ‘전략적 완충자’ 또는 ‘조정자’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조용한 분노: 중국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장면

축전의 온도는 냉정할 정도로 달랐습니다.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무기 기술 이전을 암시하며 연일 밀월을 과시하는 동안, 베이징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2024년 북한의 주요 기념일마다 푸틴은 장문의 축전과 선물을 보냈지만, 시진핑의 메시지는 짧고 원론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중국 내 북한 노동자들의 송환 문제를 두고 양국 간 미묘한 마찰이 발생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중국은 지금 '조용한 분노'를 삼키고 있습니다. 

북·러가 지나치게 밀착해 사고를 치면, 결국 미국·일본·한국의 결속만 강화되어 중국을 압박하는 결과(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북한은 '버릴 수 없는 방패'지만, 러시아와 손잡고 날뛰는 북한은 '통제 불능의 골칫덩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 9월의 반전: '차이나 패싱'을 넘어선 위험한 재회

영원할 것 같던 러시아와의 밀월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상수를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러시아와의 군사 밀착으로 몸값을 한껏 높인 김정은 위원장은, 2025년 9월 시진핑 주석과 전격 회동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다시 베이징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이는 북한이 러시아에만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중국이라는 거대한 '안전판'을 쥐고 있음을 과시한 고도의 외교적 행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재회는 과거의 따뜻한 혈맹과는 공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중국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받은 군사 기술이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켜 미국의 압박을 강화하는 것을 여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아래 머물면서도 러시아를 지렛대 삼아 끊임없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합니다.

결국 2025년의 북·중 회담은 '차이나 패싱'에 대한 중국의 우려와 북한의 자율성 확보 의지가 충돌하며 빚어낸 아슬아슬한 타협점이었습니다. 

이제 삼각관계는 어느 한 쪽이 소외되는 구조가 아니라, 세 나라가 서로를 견제하며 이용하는 더 정교하고 복잡한 '삼각 체스판'으로 진화했습니다.


각기 다른 속내를 품은 채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는 북·중·러의 움직임은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러한 격변의 시대에 대한민국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그 방향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5부: 격랑의 시대, 대한민국의 선택과 과제

우크라이나 평원에서 터지는 포성은 더 이상 먼 나라의 불꽃놀이가 아닙니다.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한 수백만 발의 포탄과 미사일은 단순한 물자 지원을 넘어, 우리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나비효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북한은 자국 무기가 현대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서방의 첨단 방공망을 어떻게 뚫는지에 대한 '실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있습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러시아가 그 대가로 넘겨줄 첨단 군사 기술입니다. 

정찰위성, 핵잠수함,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북한이 갈구해온 '최후의 퍼즐'들이 러시아의 손을 거쳐 평양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한반도의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파도가 되어 우리 턱밑까지 차오른 셈입니다. 

이제 한반도의 안보는 지구 반대편의 전쟁과 운명을 공유하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었습니다.


5.1. 신냉전 구도의 고착화: 거대한 '두 개의 성벽'이 마주 서다

현재 동북아시아는 단순한 갈등을 넘어, 서로의 가치관과 안보 시스템이 완전히 분리되는 '진영화'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① 한·미·일: '제도화'된 안보 공동체 (The Institutionalized Bloc)

한·미·일의 결속은 이제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2023년 캠프 데이비드 합의 이후, 3국은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매년 정례적인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합니다. 

특히 2025년 들어서는 3국 협력을 상시 관리하는 '사무국' 설치 논의까지 구체화되었습니다.


"우리의 안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칙 아래, 한·미·일은 북핵 억제를 넘어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는 거대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② 북·중·러: '이익'과 '반미'로 뭉친 전술적 요새 (The Strategic Fortress)

반면 북·중·러는 한·미·일처럼 끈끈한 가치 동맹은 아니지만, '미국 주도의 질서 타파'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뭉쳤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의 무기와 병력을 지원받으며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중국 역시 북·러의 지나친 밀착을 경계하면서도,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들을 '뒷배'로 활용하는 복잡한 셈법을 가동 중입니다.


2025년 9월, 베이징 열병식에서 시진핑, 푸틴, 김정은이 나란히 선 모습은 "더 이상 서방의 규칙을 따르지 않겠다"는 권위주의 진영의 강력한 선전포고와 같았습니다.


2025년 9월 3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 열병식. 푸틴, 시진핑, 김정은이 나란히 걷고있다.


③ 격돌하는 지각판: '중간 지대'가 사라진 한반도

이 두 진영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한반도입니다. 

과거에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대북 제재에 동참하며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풍경은 사라졌습니다. 

러시아는 유엔 대북제재 감시기구를 해체했고, 중국은 북한의 도발을 미국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이제 한반도는 양 진영의 힘이 팽팽하게 맞부딪히는 '신냉전의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거대한 진영 간의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구조적 긴장이 일상이 된 것입니다.


5.2. 우리의 대응 전략: 새로운 대전략을 향하여

강화되는 북·중·러의 협력은 우리에게 명백한 안보적 도전입니다. 

이러한 격랑의 시대에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다층적이고 정교한 대전략을 모색해야 합니다.


1. 굳건한 동맹 기반의 억제력 강화 

무엇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고,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압도적인 억제력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 안보의 근간이 되어야 합니다.

2. 변화하는 삼각관계의 균열 활용 

북·중·러 관계가 완벽한 삼각동맹이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들의 협력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편의의 선택’에 가깝습니다. 

특히 4부에서 분석한 북·러 밀착에 대한 중국의 '이중적 압박' 상황과 전략적 딜레마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각국의 이해관계 차이를 파고드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외교를 통해 우리의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3. 원칙에 입각한 대화와 교류 모색 

강력한 군사적 억제력을 유지하는 것과 별개로, 역내 긴장을 완화하고 안정적인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합니다. 

힘의 균형을 바탕으로 하되, 예측 불가능한 충돌을 막기 위해 원칙에 입각한 대화와 교류의 문을 열어두는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위기를 관리하고 평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70년 전 포화 속에서 맺어진 삼각관계는 이제 '이념'이 아닌 '생존'과 '패권'의 복잡한 방정식으로 진화했습니다. 

격랑의 파고가 높아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인 대응보다 냉철한 역사의 교훈입니다.


이 글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북·중·러 관계 변화를, 공개된 역사적 사실과 널리 알려진 외교 사건을 바탕으로 한 “서사형 해설”로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연대기적 사실(전쟁, 수교, 제재, 정상회담 등)은 가능한 한 실제 흐름에 맞춰 서술했지만, 문장 속의 긴장감과 이해를 돕기 위해 표현을 드라마틱하게 다듬은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전략적 재편”, “위계 이동”, “완충자”, “독점적 영향력 약화” 같은 평가는 단정이 아니라 정세 분석의 언어이며, 같은 사건을 두고도 학계·언론·정책 현장에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의존도 90%’처럼 비율로 표현된 문장은 시기·품목·산정 기준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 있으니, 독자께서는 구체 수치를 인용하거나 2차 활용할 경우 반드시 최신 통계와 원자료로 교차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은 특정 국가를 선악으로 재단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세 나라가 각자의 국익과 체제 안전을 위해 어떻게 협력·견제·거리를 조정해왔는지 “관계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안내서입니다.


This essay traces the North Korea–China–Russia triangle from the Korean War to today. 

It began as alignment: shared socialist roots and concern about the United States bound the three, while China and the Soviet Union backed North Korea. 

As the Sino-Soviet split widened, Pyongyang balanced both and sharpened self-reliance.

After 1991, Russia’s role shrank and China became the hub; Seoul’s ties with Moscow and Beijing deepened North Korea’s isolation, pushing China dependence and a nuclear survival strategy. 

Since Russia’s 2022 invasion of Ukraine, sanctions and wartime demand have tightened North Korea–Russia cooperation (munitions for technology and cover), weakening China’s monopoly. 

Today the triangle is more transactional, with Beijing a cautious buffer that seeks coordination yet fears instability. 

Implications for South Korea: bolster deterrence exploit fissures, and manage cr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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