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끝에서 부활한 고구려 신화, 이규보와 동명왕편의 탄생 (Yi Gyubo)


붓 끝에서 되살아난 신화: 청년 이규보, 『동명왕편』을 쓰다


혼돈의 시대, 붓을 든 청년

때는 12세기 말, 고려.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칼을 든 무신들이 나라의 주인이 된 시대였다. 

정변은 일상이 되었고,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 나라는 안팎으로 흔들렸다. 

붓의 힘은 칼의 위세 아래 빛을 잃었다. 

잘 벼린 칼 한 자루가 잘 쓴 상소문보다 가치 있는 시대, 문신들은 숙청되거나 숨죽여 살아야 했다.

이 혼돈의 한가운데, 26세의 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규보(李奎報). 

아홉 살 때부터 글재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천재였지만, 그의 재능은 시대의 불운 속에 갇혀 있었다. 

문(文)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 그의 천재성은 국가의 자산이 아니라 개인의 짐일 뿐이었다. 

과거에 급제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벼슬자리 하나 얻지 못한 채, 그는 개경의 초가집에서 가난과 싸우며 울분을 삼키고 있었다.

"나는 언제까지 이 초가집에 갇혀 썩어야 하는가! 내 재주가 이리도 쓸모없단 말인가..."

그의 가슴은 답답함으로 가득 찼다. 

암울한 현실은 그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찾도록 강요했다. 

그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넘어, 붓의 가치를, 나아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증명하기 위한 위대한 정신을 찾아 나서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이규보


1. 불운한 천재, 스스로 '백운거사'라 칭하다

이규보의 본명은 '인저(仁氐)'였다. 

아버지 이윤수는 아들의 비범한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큰 기대를 걸었다. 

9세부터 '기동(奇童, 기이한 아이)'이라 불리며 문재를 떨쳤던 그는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무신들이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혼란 속에서 칼 대신 붓을 든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23세에 예부시에 급제했지만,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을 그는 관직 없이 떠돌아야 했다. 

생활고는 극심했고, 뜻을 펼치지 못하는 울분은 그를 술과 시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는 당대의 문인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며 시대의 아픔을 토로했다.


친구: "이보게 춘경(春卿, 이규보의 자), 자네 같은 천재가 이러고 있으니 시대의 잘못인가, 운명의 장난인가."

이규보: "허허, 그저 하늘 아래 흰 구름처럼 떠돌다 갈 팔자인가 보네. 그래서 내 호를 백운거사(白雲居士)라 하지 않았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깊은 슬픔에 잠긴 이규보는 잠시 개경을 떠나 천마산에 은거하며 스스로를 '백운거사'라 칭했다. 

이는 세상을 등진 은자의 모습처럼 보였지만, 그 내면에는 현실에 대한 깊은 고뇌와 자신의 재능을 품어주지 않는 시대에 대한 좌절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좌절은 단순한 실의를 넘어, 잊힌 역사와 국가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규보 「화숙덕연원(和宿德淵院)」

落日三盃醉

淸風一枕眠

竹虛同客性

松老等僧年

野水搖蒼石

村畦繞翠巓

晚來山更好

詩思湧如泉


해 질 녘에 술 석 잔에 취해, 맑은 바람을 베개 삼아 한잠 든다.

속이 빈 대나무는 떠도는 나그네 마음을 닮았고, 오래된 소나무는 세월을 견딘 늙은 스님과도 같다.

들물에 실린 물길이 푸른 이끼 낀 바위를 흔들고, 마을 밭두렁은 푸른 산 능선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

저녁이 깊어질수록 산은 더 좋아 보이고, 가슴속에서 시상이 샘물처럼 끝없이 솟아오른다.


술 한 잔에 세속의 답답함은 잠시 내려놓고, 산사와 자연 속에서 ‘백운거사’라는 자기 캐릭터를 즐기는 이규보가 그대로 담겨 있는 시이다.

자연 묘사 =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의 답답함을 견디게 해 주는 정신적 피난처 + 시인으로서 자의식,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살아 있다.


2. 먼지 쌓인 책장에서 운명을 만나다

1193년(명종 23) 4월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낡은 서책들을 뒤적이던 이규보의 눈에 한 권의 책이 들어왔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구삼국사(舊三國史)』였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던 그의 손가락이 '동명왕본기(東明王本紀)'라는 제목 앞에서 멈췄다.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온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신화. 

알에서 태어나고, 햇빛을 받아 잉태되고,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유학을 공부한 그에게 동명왕 신화는 그저 어리석은 백성들이나 믿을 법한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규보: (책을 탁 덮으며) "하하,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알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활로 물고기와 자라를 불러 다리를 만들다니. 어리석은 백성들이나 믿을 법한 귀신 이야기로군. 공자께서도 괴력난신(怪力亂神)은 말씀하지 않으셨거늘!"


그는 동명왕의 신이한 행적을 '황당하고 기이한 일'이자 '귀신(鬼)과 환상(幻)'이라 여기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기이한 이야기들은 좀처럼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냉소적인 태도는 곧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극적인 인식의 전환으로 이어질 운명이었다.


3. 깨달음의 순간: '귀신'이 아니라 '성인'이었다

떨쳐지지 않는 의문에 이규보는 다시 『구삼국사』를 펼쳤다. 

그는 동명왕본기를 세 번이나 거듭 읽고 또 읽었다.

첫 번째 읽었을 때는 그저 비웃음만 나왔다. 

그러나 두 번째 읽을 때, 그의 학자적 지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지식의 파편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잠깐...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 이야기는... 기이하지만 중국의 황제가 하늘의 명을 받아 내려왔다는 신화와 그 구조가 닮지 않았는가? 주몽이 알에서 태어난 기적은 또 어떤가. 고대 중국 국가의 시조들 역시 신비롭게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지 않은가!' 

그는 이야기 속에 숨겨진 패턴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책을 읽었을 때, 그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빛났다. 

거대한 깨달음의 파도가 그의 온몸을 덮쳤다. 

이것은 중국 신화의 어설픈 모방이 아니었다. 

우리 역사 또한 그에 못지않은 신성한 기원을 가졌음을 증명하는, 동등한 격을 가진 우리만의 서사였다! 

동명왕의 이야기는 단순한 '귀신과 환상(鬼幻)'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논리를 뛰어넘는 '신성함과 성스러움(神聖)'의 기록이었다. 

이것이 이규보가 발견한 핵심이었다.


개념
이규보의 초기 생각 (鬼幻, 귀신과 환상)
이규보의 깨달음 (神聖, 신성과 성스러움)
본질
황당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속임수와 허깨비
인간의 논리를 넘어서는 필연적인 역사적 사실
목적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거룩한 목적을 가진 행위
근원
알 수 없는 잡스러운 힘
하늘의 명령 (天命)


이 깨달음의 순간, 그는 전율했다. 

이것은 조작된 신화가 아니라, 하늘의 뜻이 이 땅에 구현된 거룩한 역사였던 것이다.


이규보: (눈을 빛내며) "아! 이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성인(聖)의 기록이었다! 귀신 장난이 아니라 신(神)의 자취였구나! 고구려의 건국은 하늘의 뜻에 따른 필연이었던 것이다. 김부식 공께서는 국사를 세상을 바로잡는 책이라 여겨, 이 위대한 신의 자취를 그저 '지나치게 기이한 일'이라 치부하고 후세에 보이기 옳지 않다며 생략해버리셨구나! 아, 통탄할 일이로다!"


이 위대한 깨달음은 10년간 벼슬길이 막혀 좌절하던 불운한 천재를 새로운 사명감으로 불타오르게 했다. 

그는 붓을 들어 잊힌 역사의 신성함을 되살리기로 결심했다.


4. 붓 끝에 민족의 혼을 담다: 『동명왕편』의 탄생

새로운 사명감에 불타오른 이규보는 『동명왕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의 동기는 명확했다. 

첫째,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합리주의적 사관에 입각해 놓쳐버린 고구려 건국의 신성성을 복원하여 우리 민족이 본래 '성인의 나라'임을 천하에 알리고자 하는 역사적 사명감이었다. 

둘째, 산문 기록인 『구삼국사』의 내용을 당대 최고의 문학 양식인 5언 서사시로 재창조하여 동명왕의 위대한 사적이 노래처럼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는 문학적 야망이었다.

그는 치밀한 구상에 들어갔다. 

단순히 이야기를 시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고구려 건국의 신성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이규보: "그래, 이야기의 시작(서장)과 끝(종장)에 중국의 삼황오제와 한나라 황제들의 고사를 넣어 우리의 역사 또한 그에 못지않은 신성함을 지녔음을 보여주어야겠다.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신모(神母) 유화의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 주몽의 탄생이 곧 하늘의 뜻이었음을 분명히 하리라!"


이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화적 외교의 대담한 한 수였다. 

동명왕의 서사를 당대 세계의 표준이었던 중국 건국 황제들의 전설로 감쌈으로써, 이규보는 천하가 고려의 건국 신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는 시를 통해 우리의 역사가 변방의 기이한 이야기가 아니라, 위대한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장대한 서사시임을 웅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의 붓 끝에서 장대한 민족 서사시 『동명왕편』이 탄생했다.


불우한 시대에 피어난 위대한 유산

1193년, 26세의 불우한 청년 이규보가 완성한 『동명왕편』은 단순한 시 한 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신들의 칼바람과 외세의 위협 속에 위축되었던 고려인들의 가슴에 민족적 자긍심이라는 불을 지핀 위대한 선언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이규보 개인의 운명에도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압도적인 문학적 재능과 깊이 있는 역사 인식을 보여준 『동명왕편』은 훗날 그가 최씨 무신 정권의 눈에 띄어 등용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에게 권력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몽골의 침략기, 그는 최고위 관료로서 비교적 안전한 강화도에서 나라의 외교 문서를 도맡아 썼다.

그가 붓으로 국난 극복에 기여하는 동안, 바깥의 육지에서는 황룡사 구층탑이 불타는 등 온 나라가 잿더미로 변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규보라는 인물의 역설이다. 

민족에게 목소리를 선물한 애국자이자, 살아남기 위해 잔혹한 정권을 헤쳐나간 현실주의자. 

초가집에서 절망하던 청년은 고위 관료가 되어 세상을 떠났고, 자신의 서사시만큼이나 복잡하고 눈부신 유산을 남겼다. 

그의 붓 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강화군에 위치한 이규보의 묘

이 글은 고려 문인 이규보와 『동명왕편』에 대한 역사 기록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당시 정황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서사형 글입니다. 

연대·사건·직함 등은 가능한 범위에서 실재에 맞추었으나, 인물의 속마음과 대화, 세부 상황의 연결은 필자의 상상과 해석이 더해진 부분이므로 ‘역사 연구 논문’이 아니라 ‘역사를 소재로 한 스토리텔링’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세부 해석과 평가에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감안해 주세요.


This post follows Goryeo poet Yi Gyubo, a prodigy living under a military regime where the brush has yielded to the sword. 

After years of poverty and a blocked career, he retreats as ‘Baegun Gosa’, seeking refuge in wine and verse. 

One day he opens the dusty Old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and at first mocks the Dongmyeong myth as childish ghost tales, but rereading transforms his view: he sees it as a founding narrative that sets Goguryeo beside China’s sage-kings. 

Fired by this insight, he composes Dongmyeongwangpyeon, turning the myth into high literature to restore his people’s lost dignity and, in doing so, reshapes both his own fate and Korea’s memory of its ancient 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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