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희망: 시리아 내전과 '하얀 헬멧' 이야기
잊혀진 전쟁,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현장의 공기는 언제나 희뿌연 먼지와 매캐한 화약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폭격이 멈춘 뒤 찾아오는 섬뜩한 정적 속에서 우리는 무너진 건물 잔해 너머로 떠오르는 절망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2011년, '아랍의 봄'과 함께 시작된 자유를 향한 외침은 시리아를 10년이 넘는 깊은 내전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백만 명의 삶의 터전을 파괴한 이 비극은 점차 국제 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하지만 포탄이 빗발치는 절망의 땅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었습니다.
바로 평범한 이웃들이 스스로 구조대가 되어 폐허 속에서 생명을 구한 '하얀 헬멧'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시리아 내전의 참혹한 현실, 특히 비인간적인 화학무기 공격의 실상을 조명하고, 그 잿더미 속에서 인류애를 지켜낸 '하얀 헬멧'의 숭고한 활동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1. 끝나지 않은 비극: 시리아 내전의 배경
1.1. 독재와 저항, 그리고 내전의 시작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3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은 금세기 최악의 인도주의적 재앙 중 하나입니다.
이 비극의 씨앗은 1963년 바트당 체제로부터 50여년 이어진 철권통치에 있었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된 저항은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에 부딪혔고, 이는 곧 전면적인 내전으로 번졌습니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의 조용한 도시 다라(Daraa)의 한 학교 담벼락에 어린 소년들이 장난스러운 낙서를 남겼습니다.
"당신의 차례다, 박사님(Doctor)."
여기서 '박사'는 안과 의사 출신인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시리아의 독재자)를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튀니지와 이집트를 뒤흔든 '아랍의 봄(Arab Spring, 중동 민주화 운동)'의 파도가 시리아의 국경을 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재 정권의 대응은 잔혹했습니다.
정부는 낙서를 쓴 아이들을 체포해 고문했고, 이에 분노한 부모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단순히 아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던 목소리는 순식간에 정권 퇴진 운동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사실 이 폭발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리아 내부에는 이미 세 가지 거대한 폭탄이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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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분의 금요일 (2011년 4월 29일, 바니아스의 반정부 시위) |
종교적 불균형: 시리아 인구의 70% 이상은 수니파(Sunni, 이슬람 최대 종파)였지만, 권력은 단 10%에 불과한 소수파 알라위파(Alawite, 아사드 가문이 속한 종파)가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40년 넘게 이어진 소수의 지배는 다수의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습니다.
최악의 가뭄: 2006년부터 5년간 시리아를 덮친 기록적인 가뭄은 농토를 황무지로 만들었습니다.
살길을 잃은 150만 명의 농민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도시는 실업과 빈곤으로 가득 찬 화약고가 되었습니다.
다만 가뭄이 내전을 “직접 촉발했다”고 단정하는 건 조심해야 합니다
이 가뭄은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금이 간 사회를 더 쉽게 부서지게 만든 “압력”으로 이해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철권통치의 한계: 바샤르 알 아사드는 부친에게 권력을 승계받은 후 초기에는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친인척 위주의 부패와 비밀경찰을 동원한 감시 정치를 강화하며 민심을 잃었습니다.
정부군은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시작했습니다.
평화적이었던 민주화 요구는 피의 보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부의 잔혹 행위에 환멸을 느낀 군인들이 총을 들고 탈영해 자유 시리아군(FSA, 반군 연합체)을 결성하며 저항에 나섰습니다.
단순한 반정부 시위는 이제 정권의 생존과 종파의 명운을 건 처절한 내전(Civil War)으로 변모했습니다.
이 비극은 이후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극단주의 세력의 개입이 더해지며 21세기 최악의 인도주의적 참사로 기록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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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월 4일 시리아 북동부의 데이르 에조르 시 |
1.2. 복잡하게 얽힌 국제 관계와 대리전
시리아 내전은 단순히 한 국가 내부의 갈등을 넘어,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국제적 대리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주요 세력과 그들을 지원한 국제 행위자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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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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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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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드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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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이란: 전통적인 우방국으로서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통해 정권
유지를 도움.
- 북한: 대표적인 혈맹 관계로, 아사드 정권의 자국민 학살에 깊이
관여함. 1967년과 1973년 중동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를 파병했으며, 내전 발발 이후에는 탄도미사일 부품과 화학무기 물질 및 기술을 제공하며 정권을 비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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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군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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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 국제 테러 단체 알카에다 연계 조직을 전신으로 하는 이슬람
무장조직으로, 반군의 주축 세력으로 부상함.
- 터키: 자국의 안보와 영향력 확보를 위해 HTS를 비롯한 반군 세력을
지원하며 내전에 개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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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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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아사드 정권이 반군에 의해 축출되고 과도정부가
수립됨.
- 시리아 과도정부는 이전 정권과 달리 북한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외교 파트너로서 한국과의 수교를 추진하는 등 국제 사회와의 관계 재정립에 나서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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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같은 외부 세력의 지원이 어떻게 칸 샤이쿤의 비극으로 이어졌는지, 그 참혹한 결과는 이제부터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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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 내전에 관여하는 지역, 국내 및 국제 행위자들 |
2. 화학무기의 공포: 칸 샤이쿤의 비극
2.1. 2017년 4월 4일, 하늘에서 죽음이 내리다
2017년 4월 4일 새벽, 시리아 북서부의 작은 마을 칸 샤이쿤에 끔찍한 공격이 발생했습니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이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는 명백한 화학무기 사용으로 인한 비극이었음이 명확히 확인되었습니다.
OPCW는 이 공격이 국제법을 위반한 반인륜적 범죄임을 결론 내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화학무기금지기구(Organization for the Prohibition of Chemical Weapons, OPCW)의 사실조사단(FFM)은 “누가 쐈는지”를 재판하듯 단정하는 조직이 아니라, “화학물질이 실제로 사용됐는지”를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칸 샤이쿤의 경우 조사단은 치안·안전 문제로 현장을 직접 방문하지 못했지만, 부검에 참여하고, 혈액·소변·머리카락 같은 생의학적 시료와 분화구 토양 같은 환경 시료를 교차 검증해 사린(또는 사린 유사물질) 노출을 결론 냈습니다
보고서가 차갑게 보일수록, 그 차가움이 오히려 “감정이 아니라 증거로 말한다”는 방식의 무게가 되기도 합니다.
2.2. 지울 수 없는 증거: 사린 가스 노출
OPCW 조사팀은 직접 현장을 방문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사린 가스 사용을 확증했습니다.
핵심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생의학적 시료 (Biomedical Specimens) 희생자 3명의 부검과 생존자들에게서 채취한 혈액, 소변, 머리카락 등에서 사린 또는 사린 유사 물질이 검출되었습니다.
이는 피해자들이 사린에 노출되었다는 반박할 수 없는 과학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 환경 시료 (Environmental Samples) 공격이 발생한 지점의 분화구에서 채취한 토양, 주변 식물 등에서도 사린과 그 분해 산물이 검출되었습니다.
이는 해당 장소에서 사린이 살포되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였습니다.
• 피해자들의 증언 (Witness Testimonies) 생존자, 구조대원, 의료진 등 총 34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확보된 일관된 증언들은 공격 당시의 상황과 피해자들이 겪은 증상을 생생하게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3. 고통의 기록: 희생자들이 겪은 증상
OPCW 보고서에 기록된 사린 가스 노출 증상은 화학무기의 비인간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공격으로 약 100명이 사망했으며, 최소 200명 이상이 생존했지만 끔찍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OPCW 보고서에 기록된 주요 증상] 호흡 곤란, 극심한 동공 수축(축동), 경련 및 근육 연축, 근육 약화, 구토, 정신 착란, 눈의 작열감, 질식감 등. 생존자들은 사건 발생 지점과의 거리에 따라 즉각적으로 또는 몇 시간 후에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보고서의 활자들은 차갑지만, 그 뒤에는 한 가족의 아버지고, 사랑하는 아들이었던 이들의 마지막 숨결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화학무기를 '절대악'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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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윤 기자의 사린가스 그래픽 |
3. 절망 속 한 줄기 빛: '하얀 헬멧'의 숭고한 활동
3.1. '하얀 헬멧'은 누구인가?
'하얀 헬멧(White Helmets)'은 '시리아 민방위대(SCD, Syrian Civil Defence)' 의 별칭으로, 시리아 내전 속에서 활동하는 민간인 구조 단체입니다.
빵집 주인, 교사, 약사 등 평범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이 조직의 상징은 이름 그대로 '흰색 헬멧'입니다.
이는 분쟁의 어떤 편에도 서지 않고 오직 인도주의적 가치에 따라 생명을 구하겠다는 중립성과 헌신의 서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얀 헬멧’의 이야기가 세계로 퍼지면서, 이들을 둘러싼 또 다른 전쟁도 시작됐습니다
구조 활동이 곧바로 “증거”가 되는 전장에서는, 구조대 자체가 선전과 음해의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실제로 하얀 헬멧을 두고 “정치적이다/연출이다” 같은 주장들이 반복됐고, 이에 대해 여러 언론과 검증 보도는 조직을 향한 허위정보·선전 양상을 지적해 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음 속에서 더 분명해지는 건 한 가지입니다
폭격 직후의 몇 분, 무너진 콘크리트 아래에서 숨이 꺼지기 전에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누구였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3.2. 죽음의 현장을 누빈 용기
'하얀 헬멧'은 시리아 내전의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서 맨손으로 희망을 일구었습니다.
그들의 핵심적인 활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속한 인명 구조
희뿌연 먼지와 매캐한 화약 냄새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신음 소리를 따라 맨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를 파헤쳤습니다.
정부군과 반군의 포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속으로 가장 먼저 뛰어 들어가 연기와 화염 속에서 부상자를 옮기고 절망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는 것이 그들의 최우선 임무였습니다.
2. 진실을 위한 조력
칸 샤이쿤 화학무기 공격 당시, '하얀 헬멧' 대원들은 추가 공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환경 시료를 채취하고 증인들을 연결하는 등 OPCW의 진상 규명 활동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용기 덕분에 반인륜적 범죄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3. 위험을 감수한 헌신
화학무기 공격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펼치던 대원들 중 일부는 생존자들을 구하다 화학물질에 교차 오염되어 똑같은 중독 증상을 겪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구조·이송 과정에서 2차 오염이 발생해, 현장에 없던 의료진/관계자도 노출 증상을 보이는 사례가 보고됐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임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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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격 현장에서 아기 두 명을 구조한 하얀 헬멧 |
3.3. 54년 독재의 종말: 도미노처럼 무너진 다마스쿠스
13년 넘게 이어진 철권통치가 무너지는 데는 단 열흘이면 충분했습니다.
2024년 말, 전 세계의 시선이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 쏠려 있을 때 시리아 북부에서 거대한 폭풍이 시작되었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아사드 정권의 균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러시아와 이란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자국의 전쟁과 분쟁으로 지원을 줄이자, 아사드 정권의 군사력은 모래성처럼 약해져 있었습니다.
이 틈을 타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 반군 연합체 주축)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전격적인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전투는 영화보다 더 급박하게 흘러갔습니다.
난공불락이라 여겨졌던 알레포(시리아 제2의 도시)가 불과 이틀 만에 반군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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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격으로 파괴된 알레포의 거리 |
정부군은 싸울 의지를 잃고 무기를 버린 채 도주하기 바빴습니다.
승전보는 남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마(중부 전략 요충지)와 홈스(교통의 중심지)가 도미노처럼 무너졌습니다.
2024년 12월 8일 새벽,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시리아의 수도) 도심으로 진입하자, 대통령궁을 지키던 정예 부대마저 등을 돌렸습니다.
평생을 '박사'로 불리며 신처럼 군림하던 바샤르 알 아사드는 가족과 함께 비밀리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1970년 하페즈 알 아사드(바샤르의 부친)부터 이어진 54년의 가문 세습 정치가 종언을 고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거리는 환호하는 시민들로 가득 찼고, 거리 곳곳에 세워졌던 독재자의 거대한 동상들은 밧줄에 묶여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긴 겨울을 지나, 잿더미가 된 시리아에 마침내 '진정한 봄'의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시리아는 새 권력 구조를 세우는 과도기의 문턱에 섰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무너졌다고 해서 전쟁의 상처가 곧바로 봉합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실종자, 집단매장지, 지역 공동체의 복수 공포, 무장세력의 잔존, 그리고 다시 고개 드는 극단주의 위협까지..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재건의 과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과 시리아가 2025년 수교를 공식 발표한 것도, 국제관계가 새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3.4. 세계 경찰의 복잡한 셈법: "정의로운 몰락, 그러나 남은 숙제"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을 때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이를 "근본적인 정의의 실현이자 역사적 기회의 순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환호 뒤에는 날카로운 경계심이 숨어 있었습니다.
1. "지켜보겠다" – 테러 조직에서 파트너로?
미국의 가장 큰 고민은 정권을 무너뜨린 주역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 반군 연합 주축)이었습니다.
이들은 한때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입장의 변화: 2025년 7월, 미국은 HTS가 "모든 형태의 테러와 싸우겠다"는 약속을 이행함에 따라 테러 조직 지정을 해제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전제 조건: 미국은 새 정부가 모든 종파와 소수 민족을 아우르는 포용적 민주 정부를 구성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2. "뿌리 뽑아야 할 독초" – 화학무기와 ISIS
미국이 끝까지 양보하지 않는 두 가지 핵심 과제가 있습니다.
화학무기 폐기: 아사드 정권이 숨겨둔 것으로 추정되는 약 100곳의 화학무기 시설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입니다.
ISIS 재발 방지: 정권 교체의 혼란을 틈타 이슬람 국가(ISIS,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다시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동부 지역에 미군을 유지하며 감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3. 경제 제재 해제와 '트럼프 타워'의 등장?
2025년 들어 미국은 시리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시리아의 재건을 돕고 서방 세계로 유도하기 위한 '당근'입니다.
트럼프의 실용주의: 2025년 1월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는 시리아인들의 전쟁"이라며 미군 철수를 추진하는 동시에, 시리아의 석유 및 재건 사업에 미국 기업이 참여하는 실용적인 접근을 보이고 있습니다.
4. 잿더미 위에서 평화를 외치다
우리는 시리아 내전이라는 비극을 통해 독재에 맞선 저항이 어떻게 국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참혹한 전쟁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목격했습니다.
특히 칸 샤이쿤의 사례처럼 무고한 민간인을 향한 화학무기 공격은 인류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될 반인륜적 범죄의 실상을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 가장 밝은 희망이 피어납니다.
'하얀 헬멧'은 평범한 시민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포탄이 쏟아지는 공포 속에서도 이념이나 종교가 아닌 '생명'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그들의 숭고한 활동은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할 수는 없으며, 인간 존엄성과 연대의 정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하얀 헬멧'의 이야기는 폐허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조된 아이의 눈물과, 그 아이를 끌어안은 대원의 땀방울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왜 전쟁을 멈추고 평화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가?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우리의 무관심이 바로 다음 비극을 잉태하는 토양이 될 수 있음을, 또 다른 칸 샤이쿤을 만들 수 있음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5. 열린 철문, 그리고 'K-재건'이라는 새로운 희망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 직후, 시리아 전역에서는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목격되었습니다.
수십 년간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이들이 갇혀 있던 세이드나야(Saydnaya, 시리아의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의 철문이 부서진 것입니다.
햇빛을 보지 못해 창백해진 수감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가족들은 그들의 얼굴에서 잃어버린 13년의 시간을 확인하며 오열했습니다.
하지만 환희 뒤엔 무거운 과제가 남았습니다.
하얀 헬멧 대원들은 이제 포탄 구멍을 메우는 대신, 독재 정권이 은폐했던 집단 매장지를 발굴하고 전쟁 범죄의 증거를 보존하는 '진실의 파수꾼'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재건의 물결 속에서 대한민국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5년 수교 이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시리아의 무너진 인프라를 다시 세우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한국의 경험은 잿더미가 된 시리아에게 단순한 경제 원조 이상의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단절되었던 두 나라가 손을 잡은 것은 단순한 외교적 성과를 넘어, 시리아가 국제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돌아왔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54년의 독재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길고 험난하겠지만, 이제 시리아 국민들은 더 이상 하늘에서 떨어지는 포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이 비극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시리아 내전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평화는 당연히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지켜내야 하는 것인가?
하얀 헬멧이 보여준 용기와 시리아 국민들이 쟁취한 자유는, 가장 어두운 밤에도 별은 뜬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제 시리아의 하늘은 매캐한 화약 연기 대신 재건의 망치 소리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13년의 겨울을 견뎌낸 그들의 '진정한 봄'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이 비극의 교훈을 잊지 말고 기록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시리아는 전쟁의 종착역을 지나 재건이라는 새로운 출발선에 섰습니다.
이 글이 시리아의 아픔과 희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시리아 내전과 칸 샤이쿤 화학공격, 그리고 시리아 민방위대(‘하얀 헬멧’, Syrian Civil Defence)의 활동을 공개된 공식 문서·발표·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서사형 기록입니다.
특히 칸 샤이쿤 파트는 화학무기금지기구(Organisation for the Prohibition of Chemical Weapons) 사실조사단 보고서와 공식 발표에 기대어 서술했습니다.
전쟁 사망자·피해 규모는 집계 기관과 기준(민간/전체, 기간, 확인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가뭄·종파 갈등처럼 원인으로 흔히 거론되는 요소들은 학계·언론에서 해석이 갈리는 지점이 있어 단정 대신 맥락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2024년 12월 이후의 정권 교체·대외관계·제재 변화 등은 진행 중인 사안이라, 시간이 지나며 사실관계가 업데이트될 수 있습니다. (한국-시리아 수교, 미국의 시리아 관련 정책 변화 등 최신 발표는 각 정부 공식 발표와 주요 통신 보도를 함께 확인하는 것을 권합니다.)
The essay follows Syria from the 2011 Daraa protests—after children were detained for anti-regime graffiti—into a long civil war shaped by repression, social fractures, and competing foreign interests.
It then zooms in on 4 April 2017 in Khan Shaykhun, where the Organisation for the Prohibition of Chemical Weapons’ Fact-Finding Mission confirmed exposure to sarin (or a sarin-like agent) using biomedical and environmental samples, with about 100 dead and hundreds harmed.
Against that backdrop, the White Helmets (Syrian Civil Defence) appear as volunteer rescuers and truth-preservers amid disinformation.
The piece closes with the fall of Assad’s rule on 8 Dec 2024, a fragile transition, shifting U.S. policy toward Hay’at Tahrir al-Sham, and South Korea–Syria diplomatic ties in April 2025—arguing that rebuilding needs memory, justice, and att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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