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란세베스 전투: 술에 취해 스스로를 공격한 오스트리아군의 밤 (karánsebes war)


카란세베스 전투: 다민족의 비극적 코미디 (1788년)


서막. 황제의 근심과 다민족의 화약고

1788년, 합스부르크 제국(Habsburg Monarchy)의 황제 요제프 2세(Joseph II)는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황제가 이끈 군대는 20만에 달하는 거대한 다민족 군대였다. 

독일어,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이탈리아어 등 수십 개의 언어와 수많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말 그대로 움직이는 다민족의 화약고였다.


장소는 바나트(Banat) 지역, 티미슈 강(Timiș River)을 끼고 있는 카란세베스(Karánsebes, 현 루마니아) 근방이었다. 

이 방대한 군대는 규율보다 혼란에 더 익숙했고, 병사들은 언어가 달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9월 17일 저녁, 오스만군이 강 건너에 있다는 첩보에 후사르(Hussar, 경기병) 부대가 선발대로 파견되었다. 

강을 건너간 후사르들은 깊어가는 밤, 오스만군과의 교전이 아닌, 예기치 않은 보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현지 주민들이 숨겨둔 슈납스(Schnapps, 독한 증류주)가 가득 담긴 술통들이었다. 

혹독한 행군에 지쳐있던 후사르들은 전투를 잊은 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오스만군이 카란세베스로 진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1795년 작)


제1부. 술통에서 터져 나온 오해와 탐욕

밤은 깊었다. 

술통 주변의 후사르들은 이미 눈이 풀려 있었고, 경계도 잊은 채 웃고 떠들었다. 

그때 뒤늦게 강을 건너온 공병대(Engineer)와 일부 보병들이 술 냄새를 맡고 다가섰다.


공병대장 슐츠(Schultz)는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 악센트로 후사르들을 향해 윽박질렀다.

"Was ist das? (이게 뭔가?) 당장 술통을 본대로 돌려보내라. 너희는 수색 임무 중이다! 이건 중죄다!"


술통 위에 앉아있던 후사르 병장 드라간(Dragan, 세르비아계)은 잔뜩 취해 혀가 꼬여 있었다. 

그는 슐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하듯 세르비아어로 대꾸했다.


술에 취한 후사르들


"Pola, Vlasi! (절반은 우리의 몫이다, 이 오랑캐들아!) 너희는 이 술 냄새도 맡지 못할 거다!"


슐츠는 후사르의 조롱 섞인 외침과 험악한 표정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는 'Pola'를 'Posten'(경계)으로 착각했으나, 그들이 술을 독점하려 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너희는 군인인가, 도적인가! 지금 즉시 무기를 내려놓고 복종하라! Befehl ist Befehl! (명령은 명령이다!)"


공병대의 뒤를 따르던 이탈리아계 보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흥분했다.

"Signori, dobbiamo prendere il ponte! (신사들, 우리는 다리를 차지해야 한다!)" (이탈리아어)


언어의 폭풍 속에서, 이들은 서로의 말이 아닌 오직 적개심만을 이해했다. 

술통을 잡고 버티던 후사르 한 명이 공병대원의 뺨을 때렸다. 

분노한 공병대원이 권총을 꺼내 하늘로 쏘아 올렸다. 

총성이 밤의 정적을 갈랐다.


공포에 질린 공병대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튀르켄! (Türken!) 오스만군이다!" (독일어) 


이 외침을 들은 세르비아계 병사들은 공포에 질린 독일군이 외치는 소리에서 '돌격하라'는 뜻의 무시무시한 명령만을 들었다. 

뒤이어 달려온 후사르들이 혼란 속에서 외쳤다. 

"알라! 알라!" 

이슬람의 함성을 흉내 낸 비명은 본진을 향해 퍼져나갔다. 

이 최초의 오해는 20만 대군을 집어삼킬 재앙의 도화선이었다.


제2부. 광기의 폭발: 포성이 울리고 마차가 돌진하다

밤 11시, 강 건너편의 총성과 비명은 이미 광란으로 변해 본진을 덮쳤다. 

'터키군이 기습했다'는 소문은 군 전체로 퍼져 나갔다. 

지휘관들은 상황을 파악하려 했으나, 깊은 어둠과 강변의 안개, 그리고 언어의 장벽 때문에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혼란의 와중에, 한 독일인 장교가 보병대를 향해 소리쳤다.

“할트! 할트! (Halt! 멈춰!)”


이 독일어 명령은 군대 내의 세르비아계 병사들에게는 "알라! 알라!" (Allah! 오스만의 함성) 또는 "후라! (Hura! 돌격!)" 와 같이 들렸다. 

명령이 곧 적의 함성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공포에 질려 강을 건너 되돌아오는 후사르와 공병대는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이들이 술통과 기타 보급품을 싣고 도망치기 위해 사용한 보급 마차들의 덜컹거리는 굉음이 밤안개 속에 울려 퍼졌다.


보병대 병사들에게 이 소리는 단순한 후퇴가 아닌, 수천 명 규모의 오스만 기병대가 대규모로 돌격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성을 잃은 병사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움직임에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악의 순간이 찾아왔다. 

강 건너편의 난장판을 지켜보던 합스부르크 군의 포병대는 아군이 이미 적에게 포위되었다고 오판했다. 

그들은 후방의 오스만군을 막고 전방의 아군을 엄호한다는 명목 하에, 강 계곡과 아군 진영을 향해 무차별적인 포탄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포탄이 폭발할 때마다 아군의 진지가 찢겨나갔고, 그 충격파와 섬광은 혼란을 공포로 승격시켰다. 

이 포격은 아군 사상자를 급증시킨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제3부. 황제의 절규와 치욕적인 도주

상황은 수습 불가능했다. 

요제프 2세 황제는 사령부 텐트에서 뛰쳐나와 이 광기를 멈추려 했다. 

그는 말을 타고 혼란의 중심을 향해 돌진하며, 자신의 목이 터져라 외쳤다.


"Halten Sie ein! Sie sind Österreicher! (멈춰라! 그들은 오스트리아군이다!)" (독일어)

"Hört auf zu schießen! (총 쏘는 것을 멈춰라!)"


그의 목소리는 난무하는 총성과 포탄의 폭발음, 그리고 수많은 언어로 뒤섞인 비명과 포효 속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병사들은 자신의 눈과 귀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황제가 탄 백마를 오스만 고위 장교의 말로 오인했고, 그의 복장과 실루엣을 터키군 파샤(Pasha, 고위 장군)의 모습으로 착각했다.


그가 다시 한 번 절규하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 총성 두 발이 연이어 울렸다. 

황제의 말은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황제는 안장에서 굴러떨어져 진흙탕에 처박혔다.(전승)


흙과 피로 얼룩진 채,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제국의 최고 통수권자가 자신이 이끄는 병사들이 쏜 총알을 피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야 하는,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황제는 경호병들의 도움을 받아 진흙을 털어낼 틈도 없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 간신히 사령부로 돌아갔다. 

공포와 배신감, 그리고 절망으로 그의 심장은 찢어지는 듯했다. 

그는 이튿날 아침, 카란세베스를 포기하고 군대를 이끌고 퇴각 명령을 내렸다.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 2세와 그의 군인들, 1787년.


오스만의 손쉬운 승리

이틀 후, 오스만 제국군이 실제로 카란세베스에 도착했다. 

오스만군은 이미 버려진 진지와 다리 근처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강변과 들판에는 약 1,200명의 사상자 (사망자 및 부상자)가 오스만군이 아닌, 합스부르크 제국의 병사들의 총격과 포격으로 쓰러져 있었다.(전승)


오스만군은 단 한 발의 총성 없이 텅 빈 적의 진지를 손쉽게 점령하며, 값싼 승리를 챙겼다. 

오스만군 사령관은 이 사건을 전해 듣고 "저 신성로마제국 군대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능력이 있다"고 조롱했다고 전해진다.


황제 요제프 2세는 이 비극적인 코미디를 '군대의 질서와 규율이 무너졌을 때 공포가 낳는 괴물'로 기록했다. 

카란세베스 전투는 전 세계 군사 교본에 '프렌들리 파이어(Friendly Fire)와 오판의 가장 극적인 예시'로 영원히 기록되었다.


이 글은 1788년 ‘카란세베스 전투’로 알려진 사건을 바탕으로, 실제 전쟁 배경과 군대 구조를 참고해 블랙 코미디 톤으로 재구성한 역사 서사입니다.

당시 전투의 구체적 경과, 병사들의 대사, 황제의 움직임, 사상자 수 등은 사료가 매우 부족하고 후대 일화집과 군사 야담을 통해 과장·각색된 (전승) 요소가 많습니다. 

글 속 장면·대사·인물 심리는 역사적 맥락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가공한 창작임을 전제로 읽어 주세요.


다민족 군대의 언어 혼선, 오인 사격과 포격, 오스만군이 거의 싸움 없이 진지를 차지했다는 골자는 여러 2차 연구에서 반복되는 서술이지만, 실제 사실 여부와 세부 연출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이 글은 학술 논문이 아니라 “역사 기반 스토리텔링”에 가깝기 때문에, 흥미롭게 즐겨 읽되, 학문적 연구·인용에는 반드시 1차 사료와 전문 연구서를 함께 참고하시길 권합니다.


In 1788, during the Austro-Turkish War, a huge multiethnic Habsburg army camped near Caransebes. 

A hussar detachment found schnapps, quarrelled with other troops, and a shot plus language confusion turned into cries of “Turks!”. 

Panic spread, units fired on each other and artillery shelled their own lines. 

Emperor Joseph II was nearly killed, the army broke and fled, and the Ottomans arrived days later to occupy an empty, ruined c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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