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걷히기 직전, 포트스미스(Fort Smith, 아칸소) 강가에 안개가 눌어붙어 있었다.
배스 리브스(Bass Reeves, 1838–1910, 최초의 흑인 미국 연방보안관)는 안장에 앉아 새 안장을 한 말의 귀를 한번 쓰다듬었다.
오늘은 영장이 네 장이다.
판사 아이작 C. 파커(Isaac C. Parker, 연방판사)가 서명했고, 집행 구역은 인디언 준주(Indian Territory, 현 오클라호마) 깊숙한 곳이다.
그는 모자 안쪽에 영장을 눌러 담고, 허리의 콜트 리볼버를 슬쩍 돌려보았다.
시계는 새벽 다섯 시를 조금 지나 있었다.
리브스는 이렇게 이른 시간을 선호했다.
길이 말을 놓아주고, 사람의 경계가 아직 깨어나지 않을 때.
그 틈이 가장 멀리까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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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스 리브스의 흑백 초상” / “Portrait of Bass Reeves”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셜 |
그는 한때 노예였고, 윌리엄 스틸 리브스(William Steele Reeves)의 소유였다.
남북전쟁이 터졌을 때, 텍사스와 인디언 준주 경계로 끌려갔고, 어느 밤 주인과 시비 끝에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전승).
리브스는 체로키(Cherokee), 크리크(Muscogee/Creek), 세미놀(Seminole) 사람들 틈에서 살았다.
사냥과 추적을 배웠고, 말을 타고 강을 건너는 법을 익혔고, 몇 가지 언어를 귀에 붙였다.
그 몇 해가 그의 학교였다.
후일 법정에서 검사가 “문맹 아닌가”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 글자는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의 발자국과 말의 침 묻은 언어를 읽을 줄 압니다.”
그 언어는 법의 문장만큼 정확했다.
1875년 여름, 파커가 포트스미스 연방법원에 부임했다.
그는 보안관 제임스 F. 페이건(James F. Fagan, 연방보안관)에게
수백 명의 대리 보안관(deputy U.S. marshal)을 뽑으라 했다.
지도는 넓었고, 영장은 쌓였고, 감옥은 좁았다.
그때 리브스가 뽑혔다.
그는 글을 못 읽었지만, 영장 이름과 얼굴을 외웠다.
이름을 들으면 키와 걸음, 담배 냄새, 총의 위치가 함께 떠올랐다.
동료들은 그를 “개처럼 추적하고, 판사처럼 침착하다”고 말했다(전승).
그 말은 자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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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작 파커 판사 초상” / “Portrait of Judge Isaac C. Parker” NARA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US Gov). 위키미디어 공용 |
신호는 간단했다.
리브스는 현장에 먼저 들어갔다.
농부, 마부, 유랑 노동자, 설교자로 변장했다.
가죽이 해진 모자, 묵주처럼 보이는 말채찍, 장터에서 사 온 옥수수 가루 자루.
한 번은 도로가 턱없이 무너진 마을에서 파수꾼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자리를 찾습니다.
대가 받는 건 나중에.”
그날 밤 그는 도둑떼의 저녁 식탁에 앉아 헌 옥수수빵을 씹었다.
주인의 이름을 들었고, 말의 턱에 붙은 상처를 봤다.
새벽이 되자, 장롱 뒤에 숨겨둔 스프링필드 소총과 탄띠 위치까지 파악했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그는 밖에서 자신의 말을 불러 세웠다.
일단의 남자가 문을 열고 뛰어나왔고, 누가 먼저 총을 뽑는지 결정할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가 처음으로 큰 이름을 얻은 사건 가운데 하나는
1878년 밥 도지어(Bob Dozier, 강도·살인범)의 끝이었다.
도지어는 급습을 피하고 지형을 이용하는 데 능했다.
리브스는 며칠 동안 습지대를 돌며 말의 발굽 자국을 구분했다.
눈금 같은 갈대의 꺾임과 잎에 튄 진흙의 방향이 진로를 가리켰다.
도지어가 제일 아끼던 수로를 넘어올 때, 리브스는 짧게 외쳤다.
“연방 영장이다.”
도지어가 쐈고, 리브스가 응사했다.
먼지와 물안개 사이에서 총성이 두 번 갈라졌다.
도지어는 쓰러졌다.
보고서에 적힌 문장은 짧았다.
“사살. 정당방위(正當防衛).”
그는 생전에 범죄자 3,000명 이상을 붙잡았고, 14명은 교전 끝에 쓰러졌다.
수치는 나열이었지만, 각각의 장면은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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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트 싱글 액션 아미 1873형 리볼버” / “Colt Single Action Army 1873 revolver” Wikimedia Commons, CC0(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
리브스는 키가 컸다.
6피트가 넘는 체구에, 오른손으로는 권총을, 왼손으로는 수갑을 놀렸다.
그는 재빨랐지만, 쏘기 전에 말을 걸었다.
“내가 이름을 부르면, 너는 손을 들 것이다.”
이 말은 협상이고 경고였다.
한 남자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꾸했다.
“이름을 모르면?”
리브스는 모자를 눌러 썼다.
“모르는 이름은 영장에 없다.”
그리고 종종 그 말 뒤엔, 빠른 결말이 따라왔다.
그의 변장은 과장처럼 들리지만, 보고서는 말수를 아꼈다.
닳은 바지, 담장을 넘는 소리, 한밤중의 수레바퀴 자국.
그는 자신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어떤 날은 늙은 바보처럼 보였다.
어떤 날은 소매에 성경을 넣고, 성경 아래에 수갑을 숨겼다.
설교를 청한 강도의 첩이 “아멘”을 말한 순간, 리브스는 팔꿈치로 테이블을 밀고 수갑을 채웠다(전승).
진실 여부는 두고 본다 해도, 현장에 남은 기록과 증언은 “그가 변장을 일의 일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1887년 봄, 그는 법정에 서야 했다.
숙영 중 총을 닦다가 자신을 돕던 요리사를 오발로 죽였다는 혐의였다.
검찰은 슬그머니 ‘무모함’을 덧붙였고, 방청석은 웅성거렸다.
변호인은 W. H. H. 클레이턴(William Henry Harrison Clayton, 연방검사 출신 변호사)이 맡았다.
재현 절차와 증언 끝에 배심원단은 무죄 평결을 냈다.
판사는 휴정에 들어가며 한 문장을 남겼다.
“다음 영장을 집행하라.”
리브스는 모자를 눌러 썼다.
그의 일은 재판정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개는 거기서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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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트 스미스 구 연방 법정 내부 전경” / “Interior of Judge Parker’s courtroom, Fort Smith” Jerrye & Roy Klotz MD,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위키미디어 공용 |
벨 스타(Belle Starr, 1848–1889 서부시대 유명 여성 범법자)와의 교차 기록도 있다.
그를 체포한 이가 리브스였느냐는 문제는 자료마다 다르게 말한다(논쟁).
그러나 같은 데이터가 말해 주는 건 따로 있다.
그가 당시 준주를 누비던 여성·남성 범죄자들의 삶과 계속 교차했다는 점이다.
그가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소문은, 법과 우연 사이의 틈새를 좁혔다.
그 틈새가 범죄자들에게는 호흡이었고, 그의 손에는 수갑이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1902년 여름의 집행이다.
피의자는 베니 리브스(Bennie/Benny Reeves, 리브스의 아들).
아내 살해 혐의였다.
워런트는 아버지의 손에 들어왔다.
어떤 동료는 “대신 가겠다”고 말했다.
리브스는 “이건 내 일”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대화는 길지 않았다.
아들은 달아나지 않았다.
법정의 기록은 더 짧았다.
“검거자: 배스 리브스.”
그날 밤 호텔 방에서 그는 모자를 벗지 않았다고 한다(전승).
다음 날, 그는 또 다른 영장을 집어 들었다.
개인의 비극은 일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그의 이름은 전설이 되었고, 전설은 기록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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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냐민(베니) 리브스 머그샷(설명 텍스트 포함)” / “Benjamin (Bennie) Reeves mugshots (with caption)” NPS Site Bulletin, 연방기관 자료(PD 성격). 국립공원관리국 |
그가 쫓은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이 두 손을 들고 나오는 순간까지 협상을 이어간 이들도 있었다.
리브스는 흔히 말 대신 묻는 사람을 기억했다.
“왜 당신이어야 합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영장을 보여 주었다.
이름 옆의 날짜, 범죄 항목, 판사의 서명.
그 종이는 감정이 없었지만, 사람을 움직였다.
많은 밤, 그는 불을 끄고 영장을 다시 펼쳐 보았다.
“얼마나 남았지.”
그날의 문장이 다음 날의 방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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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즈라 터커 ‘Bass Reeves – U.S. Marshal’(2021, 회화)” / “Ezra Tucker, ‘Bass Reeves – U.S. Marshal’ (2021, painting)” Illustration History – © Ezra Tucker. illustrationhistory.org |
리브스는 글을 못 읽었지만, 청각과 기억은 그를 속이지 않았다.
영장 이름을 소리로 외워 말굽에 박았다.
그는 대상을 부를 때 성을 먼저 불렀다.
“도저.”
“스토리(Tom Story).”
“웹(Jim Webb).”
한 번은 도망자가 벌판으로 달아났고, 그의 뒤에 리브스의 말이 따라붙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30보.
달리다가 도망자가 뒤를 돌아보고 총을 뽑았다.
리브스는 말 위에서 몸을 숙였다.
먼지가 튀었다.
도망자의 두 번째 탄이 허공을 쪼갰고, 리브스의 첫 탄이 그 허공에 문장을 썼다.
보고서는 다시 두 단어였다.
“정당방위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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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위의 배스 리브스 동상과 추적견” / “Equestrian statue of Bass Reeves with a running hound” National Park Service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US Gov). 위키미디어 공용 |
그가 얼마나 많은 밤을 야영지에서 보냈는지는 숫자로 나오지 않는다.
대신 물길을 건너며 젖은 장화, 모닥불 위의 커피 냄새, 말에게 먹이 주는 손등의 굳은살 같은 자잘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 기록들이 모여, 3,000이라는 숫자를 부피 있게 만든다.
한 번의 체포는 사람 하나의 삶을 바꾸고, 두 번의 체포는 마을의 소문을 바꾸고, 수천 번의 체포는 지도를 바꾼다.
그는 그 지도를 확장했다.
길을 넓힌 게 아니라, 길 위에서 법의 말을 크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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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스 리브스의 캐비넷 초상사진(1910년경)” / “Cabinet photograph of Bass Reeves (c.1910)” Smithsonian NMAAHC, 퍼블릭 도메인.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 박물관 |
1907년 오클라호마가 주가 되었다.
연방법원의 권한과 관할이 재조정되었고, 많은 대리 보안관들이 임무를 벗었다.
리브스는 머스코기(Muskogee 원래는 머스코기족의 강제 이주(눈물의 길) 목적지였던 인디언 영토의 일부) 시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의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도시 골목길에서 그는 다시 모자를 눌러 썼다.
밤에는 예전과 같은 잡음이 났다.
다만 여명에 깨어날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 있었다.
1909년, 그의 몸은 신장질환(브라이트병)으로 약해졌다.
1910년 1월 12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관 속에 들어간 것은 한 사람의 몸이었지만, 도시가 잃은 것은 누군가의 습관이었다.
의심이 들면 영장을 펼쳐 보고, 위험이 오면 말의 고삐를 단단히 쥐는 습관.
그 습관은 다음 세대의 손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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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 관료 단체사진, 리브스가 맨 왼쪽에 선 모습” / “Federal officials group photo with Bass Reeves at far left”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셜 |
그의 삶을 두고 “론 레인저(The Lone Ranger 서부 개척 시대의 영화주인공)의 모델”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논쟁).
백마, 은색 표식, 검은 마스크 같은 상징들이 매끄럽게 겹치진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문장은 버티고 남는다.
“준주를 가장 깊게 이해했던 집행자.”
그 말은 신화가 아니라 통계와 보고서가 뒷받침한다.
지형을 읽는 눈, 언어의 기억, 변장과 협상, 그리고 필요한 순간에만 발사되는 총.
그 조합이 당시의 공백을 메웠다.
그 공백이 메워진 자리에는, 사람들이 다음 날의 약속을 적어 넣을 수 있었다.
| “하얀 말 ‘실버’ 위의 마스크 영웅을 그린 1938년 론 레인저 포스터” / “1938 serial poster of The Lone Ranger featuring the masked hero on Silver” 위키미디어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
리브스는 자신을 떠들썩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일지를 남기지 않았다.
대신 그가 쓴 보고서와 남이 쓴 기사, 동료의 구술과 피의자의 증언이 여기저기에서 합쳐졌다.
거긴 과장이 섞였고(전승), 논쟁이 붙었다(논쟁).
그러나 한 장면만은 반복된다.
문 앞에서 모자를 살짝 들어 보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연방 영장이다.
이름을 부르겠다.”
그 다음엔 늘 같은 선택지가 있었다.
따라와 수갑을 차거나, 총을 들어 더 짧은 문장을 남기거나.
그 선택의 끝에서, 배스 리브스는 오랜 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말 위에서, 모자 챙 아래서, 영장의 종이를 손끝으로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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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3년 인디언 준주 상세 지도” / “1883 map of the Indian Territory” Digital Commonwealth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공용 |
오늘 포트스미스의 강변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준주의 옛 길은 고속도로로 바뀌었다.
그 길 위에서 속도를 올리는 차들은, 모래와 물안개 속을 달리던 그의 밤을 모른다.
하지만 어느 표지판에는 작은 글씨가 있다.
“Deputy U.S. Marshal Bass Reeves.”
거기에 날짜가 있고, 숫자가 있다.
그 숫자는 장면을 대신한다.
그리고 장면은, 아직도 건조하게 유효하다.
영장이 떨어지면 누군가는 말을 타야 했다.
그 “누군가”였던 사람이, 배스 리브스였다.
이 글은 신뢰 가능한 사료·논문·공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하되,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대사·심리 묘사를 소설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연대기 강의가 아닌 재구성 서사이며,
불확실은 (전승), 해석 갈림은 (논쟁), 어원은 (어원)으로 표기했습니다.
등장 인물·지명·용어는 첫 등장 시 괄호로 간단히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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