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인터뷰, 강연, 출간 기사, 전기 자료, 영화 제작 기록 등을 참고했으나
독자의 몰입을 위해 문학적 상상과 서사적 각색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사실 그대로의 연대기가 아닌
소설체 서술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등장 인물과 용어에는 이해를 돕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기차가 늦게 달리던 여름 오후였다.
한 여자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한 소년을 떠올렸다.
검은 머리, 둥근 안경, 번개 모양 흉터,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거대한 운명에 얽히는 표정이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Harry Potter(작중 주인공)였고 여자는 J.K. Rowling(소설가)였다.
그녀는 훗날 말했다.
그날 지연된 열차의 적막 속에서 세계가 한 번에 머릿속에 들어왔다고.
그 무렵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어머니 Anne(모친)은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 상실은 그녀의 마음 곳곳에 얼룩처럼 남았다.
그녀는 포르투갈 포르투로 건너가 영어를 가르쳤고 결혼과 출산을 겪었다.
하지만 결혼은 깨어졌고 아기를 안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에든버러의 차가운 바람을 뚫고 카페 한 구석에 앉으면 김 서리는 머그컵이 작은 난로가 되었다.
그녀는 노트북 대신 머릿속에서 장면을 돌리고 냅킨과 공책에 줄줄이 적었다.
돈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문장은 끊기지 않았다.
해리의 고아 서사는 상투적 장치가 아니었다.
그녀는 보호를 잃는 일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Dementor(우울을 형상화한 흉물)는 그녀가 겪었던 우울증에서 태어났다.
행복한 기억을 빨아들이는 어둠 앞에서 마법사는 가장 밝은 기억을 불러내야 했다.
그 주문이 Expecto Patronum(수호 마법, 설명)이었다.
어두움에 맞서는 법을 그녀는 자신에게서 배웠다.
이름 하나에도 뜻을 심었다.
Albus Dumbledore(교장, 멘토)는 고어로 ‘윙윙거리는 벌’에서 왔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늘 콧노래를 부르고 사탕을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노교장에게 잘 어울리는 별명 같았다.
Severus Snape(교사, 이중의 얼굴)은 라틴어 severus(엄격한)와 영국 지명에서 울림을 빌려왔다.
차갑고 가혹하지만 끝내 사랑을 숨긴 인물에게 딱 맞는 소리였다.
Minerva McGonagall(교사, 규율과 재치)은 지혜의 여신에서 태어났고
Remus Lupin(교사, 늑대인간)은 ‘늑대’를 뜻하는 루푸스의 그림자를 등에 업었다.
Hermione Granger(친구, 성실과 신념)는 작가 자신이 어릴 적 가진 성격의 한 조각을 담았다.
책을 좋아하고 손을 번쩍 든 소녀는 종종 외로웠지만 옳다고 믿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Hagrid(사환장, 다정한 거인)는 서쪽 지방 억양을 쓰던 거구의 친절한 남자와
술집의 따뜻한 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세계의 규칙은 현실의 틈에서 만들었다.
마법부는 관료제를 풍자했고 데일리 프롭핏(마법 신문)은 공포의 시기에 진실을 흐릴 수 있다는 경고였다.
학교는 유머와 규율이 오가는 진자였다.
숲과 호수와 움직이는 계단은 장소 자체가 장치였다.
라틴어 어원은 주문에 달라붙었고 연금술과 민속은 유물에 스며들었다.
철학자의 돌, 죽음의 성물, 호크룩스 같은 단어가 낯섦을 신뢰로 바꾸었다.
호그와츠는 평행우주가 아니라 현실 속에 숨겨진 문이었다.
킹스크로스 역 9와 ¾ 승강장은 그 문을 여는 장난스러운 암호였다.
Quidditch(마법 비행 경기, 설명)는 어느 저녁 호텔방에서 태어났다.
연인과 다툰 밤 그녀는 룰과 포지션을 한 번에 적어 내렸다.
추락의 위험과 환호, 골든 스니치(날아다니는 작은 공, 설명)를 끝까지 쫓는 집요함은 성장의 비유가 되었다.
하우스 분류는 멀미봉투에 휘갈겨 적은 네 단어에서 시작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남았다.
Gryffindor, Slytherin, Ravenclaw, Hufflepuff.
용기, 야망, 지성, 성실.
아이들은 스스로의 성향을 색으로 배웠다.
출판까지의 길은 더뎠다.
여러 출판사가 “아이 마법사 이야기는 팔리지 않는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Bloomsbury(영국 출판사)가 기회를 건넸다.
회장의 어린 딸이 첫 장을 읽고 “다음 장은요?”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1997년 영국판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이 나왔고
미국판은 마케팅 판단으로 《…and the Sorcerer’s Stone》(제목 현지화, 설명)으로 바뀌었다.
출판사는 성별 선입견을 우려해 이니셜을 권했다.
그녀는 외할머니의 이름에서 K를 빌려 J.K.를 썼다.
책은 금세 세대의 언어가 되었다.
아이들은 두꺼운 책을 끌어안고 잠들었고 부모는 아이보다 먼저 읽겠다고 실랑이를 벌였다.
권수가 늘어날수록 이야기는 어두워졌다.
독자도 함께 자랐다.
사랑과 우정, 상실과 선택이 어린이와 어른을 동시에 붙들었다.
복선은 멀리 던져졌고 회수는 느리지만 정확했다.
Snape의 “Always”는 해리포터를 읽은 세대의 암호 같은 단어가 되었다.
영화는 또 한 번의 문을 열었다.
프로듀서 David Heyman(제작자)이 옵션 계약(원작 영화화 권리 사전 계약, 설명)을 맺었고
Warner Bros.(스튜디오)가 큰 그릇을 만들었다.
Chris Columbus(감독)는 1, 2편을 동화적 톤으로 열었다.
Alfonso Cuarón(감독)은 3편에서 사춘기의 그늘과 시간의 미로를 들여왔다.
Mike Newell(감독)이 4편의 토너먼트와 사망을 긴 호흡으로 밀었고
David Yates(감독)가 5편부터 완주했다.
각본은 Steve Kloves(각본가)가 대부분을 맡았고 5편은 Michael Goldenberg(각본가)가 썼다.
음악은 John Williams(작곡가)가 주제를 만들고
Patrick Doyle, Nicholas Hooper, Alexandre Desplat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알록달록한 로브와 석조 복도는 Leavesden Studios(촬영 스튜디오)에서 자랐고
호그와트의 외관은 알느윅성과 더램·글로스터 성당이 빛을 보탰다.
대강당은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9와 ¾ 승강장은 런던 킹스크로스에서 실제로 표지판이 관광지가 되었다.
처음에는 공중에 매단 진짜 촛불이 낙하해 위험해지자 이후엔 CG로 바뀌었다는 촬영 뒷이야기도 남았다.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안경은 반사 때문에 렌즈를 빼고 촬영하기도 했다.
번개 흉터는 수천 번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했다.
Rowling은 핵심 캐스팅에 영국·아일랜드 배우 중심 원칙을 요구했고 영화는 그 결을 지켰다.
Maggie Smith, Alan Rickman, Robbie Coltrane, Ralph Fiennes 같은 배우들이
아이들의 성장통에 무게를 얹었다.
캐릭터의 모티브는 더 깊다.
볼드모트는 죽음의 공포를 권력으로 번역한 인물이었다.
그의 가장 큰 결함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였다.
스네이프는 비극으로 빛났다.
사랑 때문에 분노하고 분노 때문에 증오하며 증오 때문에 끝내 사랑을 지키는 사람.
그의 이중성은 교실의 독설과 그림자의 슬픔 사이에서 흔들렸다.
시리우스 블랙은 혈통과 선택한 가족 사이의 다리를 놓았다.
네빌 롱바텀은 느린 영웅의 교과서가 되었다.
루핀의 ‘질병’은 낙인과 편견을 은유했다.
학생들은 책을 통해 굉음을 내는 전투보다 조용히 견디는 용기를 배웠다.
평론가의 반응은 넓게 갈렸다.
“문장은 평이하지만 세계 설계와 구조는 정교하다”는 분석이 많았다.
“고블린의 묘사가 고정관념을 비춘다”는 비판도 있었다.
일부 종교 단체는 ‘마녀 이야기’라며 금서를 주장했다.
하지만 서점의 자정 개장과 도서관의 대출 대기는 멈추지 않았다.
읽기의 축제가 현실의 행사로 바뀌었다.
무대는 또 한 번 변주를 시도했다.
《Harry Potter and the Cursed Child》(연극, 설명)는
Jack Thorne(극작가)과 John Tiffany(연출)와 함께 만든 속편이었다.
시간 되풀이와 친자 갈등이 또 하나의 미로를 만들었다.
헤르미온느 역 흑인 배우 캐스팅을 두고 팬덤끼리 해석이 갈렸지만 원전의 여지가 무대의 가능성과 만났다.
이 세계의 연료가 잉크만이 아니라 독자의 해석임이 다시 드러났다.
그녀는 필명 Robert Galbraith(추리소설 작가명)로도 썼다.
Cormoran Strike(사설탐정)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는 단서와 심리를 섬세하게 모았다.
《The Cuckoo’s Calling》《The Silkworm》《Career of Evil》《Lethal White》《Troubled Blood》《The Ink Black Heart》《The Running Grave》로 이어지며 세계는 점점 넓어졌다.
필명이 신문을 통해 유출되자 그녀는 법적 대응을 했고 받은 배상금을 기부했다.
그녀의 기부는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Volant Charitable Trust(자선 재단, 설명)와 Lumos(아동 복지 재단, 설명)를 통해
취약한 아이들을 돕는 데 힘을 쏟았다.
에든버러 대학교에 다발성경화증 연구를 위해 거액을 기부했고
어머니의 이름을 딴 Anne Rowling Clinic(신경학 연구 클리닉, 설명)이 문을 열었다.
다른 작품들도 이어졌다.
《The Casual Vacancy》(성인 소설)는 작은 마을의 빈 의자에서 사회의 균열을 보여주었다.
《The Ickabog》(동화)는 온라인 연재로 아이들과 함께 완성했다.
《The Christmas Pig》(동화)는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는 겨울의 모험을 그렸다.
장르가 달라도 그녀의 문체는 복선을 심고 나중에 회수하는 리듬을 유지했다.
그녀의 개인적 모습도 기록에 남았다.
1965년 7월 31일 태어났고 해리와 생일을 나눴다.
엑서터 대학교에서 불어를 공부했고 런던에서 국제앰네스티(인권 단체, 설명)에서 일했다.
현재 에든버러와 시골 사이에서 글을 쓴다.
두 번째 남편인 Neil Murray(의사)와 가정을 꾸렸고 세 아이의 엄마다.
프라이버시와 자녀 보호에 엄격하다.
일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새벽의 조용한 시간, 종이에 줄을 긋고 메모를 겹겹이 붙이고 필요하면 도표를 그린다.
결말은 초반부터 어렴풋이 정해두고 중간의 다리를 오갈 때마다 단서를 심는다.
그리고 논란이 있었다.
2019년부터 2020년 사이 그녀는 자신의 소셜 계정과 에세이에서 성별 정체성과 관련된 의견을 밝혔다.
성별과 젠더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 속에서
그녀는 여성의 권리와 단성 공간(여성 전용 공간 등)의 문제를 강조했다.
그 발언은 많은 지지와 동시에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일부는 그녀의 표현을 차별적이라고 비판했고 또 다른 일부는 표현의 자유와 여성권 옹호라고 옹호했다.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들 중 일부는 공개적으로 다른 입장을 냈다.
이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서로 다른 경험과 권리를 어떻게 함께 지킬 것인지에 대한 사회 전체의 과제라는 점이다.
그녀의 추리소설 《Troubled Blood》가 ‘여장한 살인범’ 논란에 엮였을 때도 논의는 격했다.
작품의 실제 묘사와 헤드라인의 요약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반론 역시 뒤따랐다.
결국 독자는 작품과 작가를 어떻게 읽을지 각자의 기준을 세워야 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한 권의 책이 세대를 데리고 다시 독서로 돌아오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밤 12시 서점 문이 열릴 때 쏟아진 환호.
도서관 대출 목록에 같은 이름이 줄줄이 이어진 풍경.
아이의 손에서 부모의 손으로, 그리고 다시 아이의 손으로 되돌아가던 표지.
그 장면들은 문학이 삶에 닿아 있다는 증거였다.
마법은 그런 순간 실제가 된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젠가 또 다른 기차가 느리게 달릴 때 누군가 창밖을 보다가 새로운 문을 떠올릴 것이다.
9와 ¾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15와 ½일지 모른다.
입구가 어디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 문을 통과하려 손을 뻗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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