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아하는 메네스였을까? 이집트 제1왕조의 창건자를 둘러싼 문헌과 고고학의 충돌 (Hor-Aha)



이집트 제1왕조의 확립과 파라오 호르-아하(Hor-Aha)의 정체성: 문헌 기록과 고고학적 실증의 비평적 대조


1. 초기 왕조 이집트의 성립과 파라오 정체성 논쟁의 학술적 배경

고대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100년경 상·하 이집트의 통합을 통해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중앙집권적 국가 체계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1왕조의 창건자'라는 지위는 단순한 연대기적 시작을 넘어, 파라오라는 통치자가 지니는 신성한 권위와 정치적 정당성의 기틀을 정의하는 핵심적인 상징입니다. 

그러나 국가 형성기의 혼란과 사료의 단편성으로 인해 '최초의 파라오'가 누구인가에 대한 학술적 논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본 글은 마네토(Manetho)의 '이집트의 역사(Aegyptiaca)'와 신왕국 시대 왕명표가 제시하는 문헌적 계보를 비평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나카다 상아판(Naqada Label)' 및 와디 아메이라(Wadi Ameyra) 암각화 등의 최신 고고학적 실증 데이터와 대조 분석하고자 합니다. 

특히 기록상의 메네스(Menes)와 고고학적 실체인 나르메르(Narmer), 그리고 호르-아하(Hor-Aha) 사이의 정체성 연결 고리를 규명함으로써 초기 왕조의 국가 확립 과정을 재구성하는 데 본 포스팅의 목적이 있습니다.


2. 문헌 기록에 나타난 파라오의 계보: 마네토와 왕명표의 '메네스'

고대 문헌은 제1왕조의 기원을 전설적 영웅인 '메네스'에게 일관되게 부여하고 있으나, 동시대 유물과의 불일치는 사료 비판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마네토의 편년과 '아토티스'

기원전 3세기 역사가 마네토는 메네스를 제1왕조의 창건자로 기록하며, 그가 60년(또는 62년)간 통치하다 하마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기술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메네스를 계승한 아들 아토티스(Athothis/Athotis)에 관한 기록입니다.

"메네스의 아들 아토티스는 27년(또는 57년)간 재위하며 멤피스에 궁전을 건설했고, 의학적 식견이 뛰어나 해부학 서적을 저술했다."

현대 이집트학은 이 '아토티스'를 호르-아하의 그리스식 이름으로 비정하며, 그를 문헌상 두 번째 파라오로 위치시킵니다.


왕명표상의 '네수-비트(Nesu-bit)' 명칭 대조

신왕국 시대의 왕명표는 파라오의 즉위명인 네수-비트(Nesu-bit) 이름을 주로 기록합니다. 

이 기록들은 문헌적 실재성을 뒷받침하지만 고고학적 호루스 이름(Horus-name)과의 연결에서 복잡성을 띠고 있습니다.

• 아비도스 왕명표: 제1 파라오를 '메니(mni)'로, 제2 파라오를 '테티(Teti)'로 기록합니다.

• 토리노 파피루스: 첫 번째 인간 왕을 '메니'로 기록한 뒤, 그 뒤를 '이티(Ity)'라는 이름으로 계승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칭의 불일치는 후대의 편집 과정에서 발생한 오기이거나, 호르-아하가 가졌던 다양한 즉위명들이 서로 다른 전통을 통해 전승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특히 문헌상 '메네스'라는 이름이 당대 고고학 유물에서 독립적인 세레크(Serekh: 왕의 이름을 담는 궁전 모양의 틀) 내에 나타나지 않는 '문헌-유물 간 불일치' 현상은 학술적 괴리를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입니다.

당시 파라오의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한 타원형 '카르투슈'가 아닌, 세레크(Serekh)라 불리는 사각형 틀에 담겼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틀의 하단부가 왕궁의 정면 외벽 모양을 형상화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파라오의 이름이 곧 국가의 심장부인 '궁전' 그 자체임을 시각적으로 선포하는 강력한 정치적 상징물이었습니다.


호르-아하의 세레크가 새겨진 구리 도구


3. 고고학적 유물을 통한 실증적 분석: 호르-아하와 '메네스'의 관계

텍스트 기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당대 유물이 제공하는 도상학적 증거를 분석한 결과, 호르-아하와 메네스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유력한 가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나카다 상아판(Naqada Label)의 도상학적 해석

영국 박물관 소장 '나카다 상아판'은 호르-아하의 세레크 옆에 'mn(메네스)' 기호가 새겨져 있어 결정적 단서를 제공합니다. 

이 'mn' 기호는 상·하 이집트의 수호신인 네크베트(독수리)와 와제트(코브라)를 상징하는 네브티(Nebty) 상징 아래 위치합니다.


나카다 상아판. 세레크안에 호르-아하를 상징하는 전투용 도끼도 새겨져있다. 독수리와 코브라 아래 상형문자 배치


가설 1: 동일인설 (Nebty-name 가설) 'mn'은 호르-아하의 네브티 이름이며, 이는 '메네스'가 곧 호르-아하의 별칭임을 의미합니다. 즉, 호르-아하가 문헌상의 메네스 자신이라는 견해입니다.

가설 2: 선왕 추모설 (Commemoration 가설) 'mn' 기호가 배치된 건물이 무덤 시설과 유사하다는 점에 근거하여, 호르-아하가 그의 선왕인 나르메르(혹은 그와 동일시되는 메네스)를 위해 제례를 올리는 장면이라고 해석합니다.


나르메르와의 연계성과 잠정적 판단

나르메르를 메네스로 보는 견해는 '나르메르 팔레트'와 아비도스에서 발견된 나르메르-메네스(mn) 교차 인장을 근거로 합니다. 

반면 아비도스 왕명표에서 호르-아하를 '테티' 혹은 '이티'로 비정하는 학계의 흐름은 그를 두 번째 파라오로 규정합니다.

현재 고고학계는 사료의 단편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호르-아하를 나르메르의 아들이자 제1왕조의 실질적인 체제 공고화 과정의 핵심 파라오로 보는 '잠정적 판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나르메르가 군사적 통일을 주도했다면, 호르-아하는 행정적·종교적 통합을 완성한 인물이라는 분석에 기반합니다.


4. 창과 펜으로 쓴 국가의 설계도: 호르-아하의 통치 업적

호르-아하의 시대는 단순히 칼을 휘둘러 땅을 넓히는 정복 전쟁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집트'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일 정교한 톱니바퀴들을 하나하나 조립한 국가 설계자에 가까웠습니다.


여왕인가, 섭정인가? 네이트호텝(Neithhotep)의 미스터리

과거 학계는 네이트호텝(상·하 이집트 통합의 상징적 인물)을 그저 왕의 옆자리를 지키는 왕비로만 보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발견된 와디 아메이라(시나이반도의 고대 암각화 유적지)의 기록은 학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왕의 전용 문장인 세레크(Serekh: 왕의 이름을 담는 궁전 모양의 틀) 안에 당당히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녀가 직접 국가 원정대를 조직해 파견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습니다. 

이는 그녀가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여성 파라오였거나, 혹은 호르-아하의 어린 시절 국가를 대신 통치했던 강력한 섭정이었음을 시사합니다. 

초기 이집트의 권력 구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유연하고 복잡했습니다.


네이트호텝 세레크


남쪽의 경계선을 긋다: 타-세티(Ta-Sety) 원정

호르-아하는 시선을 남쪽으로 돌렸습니다. 

아비도스에서 발견된 상아판에는 그가 타-세티(Ta-Sety: '활의 땅'이라는 뜻의 누비아 지역)를 정벌했다는 기록이 선명합니다.

단순히 영토를 넓히려는 욕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남부의 경계선을 엘레판티네(나일강 제1폭포 인근의 섬) 지역까지 밀어붙임으로써, 아프리카 내륙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황금, 상아, 흑단 같은 귀한 자원줄을 독점하려 했던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이로써 이집트는 경제적 풍요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타-세티 정벌 기록의 상아판


'흰 성벽'의 도시, 멤피스(Memphis)의 탄생

호르-아하는 상·하 이집트의 접점이자 나일강 델타 지역이 시작되는 전략적 요충지에 새로운 행정 수도를 건설했습니다. 

바로 훗날 '천년의 수도'가 될 멤피스입니다.

그는 이곳에 거대한 궁전을 짓고 관료 조직을 배치했습니다. 

인근 사카라(멤피스 인근의 거대 묘역) 지역에서 발견된 귀족들의 화려한 무덤들은, 이 시기부터 이미 멤피스가 국가 권력의 심장부로 기능하며 강력한 엘리트 계층을 길러냈음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다: 종교적 통합 전략

정치적 통합만큼 중요한 것이 마음의 통합이었습니다. 

호르-아하는 하이집트의 강력한 여신인 네이트(Neith: 전쟁과 직조의 여신)를 위해 사이스(Sais: 하이집트의 도시)에 신전을 세웠습니다.

또한, 죽음과 재생을 관장하는 세케르(Seker: 멤피스 지역의 신) 신을 기리는 헤누-바크(Henu-barque: 신성한 배)를 제작했습니다. 

이는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신들을 하나로 묶어 파라오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고도의 '종교적 마케팅'이었습니다.


사이스에 있는 네이트 여신 신전을 언급하는 호르 아하의 조각난 흑단 명판


문명을 바꾼 기술 혁신: 아비도스 보트와 금속 공예

이 시기 이집트 공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룹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정식 장부 맞춤'(Fixed Mortise and Tenon joint) 기술입니다.


장부 맞춤 기법


장부 맞춤이란 별도의 못을 쓰지 않고 나무 부재의 한쪽엔 구멍(Mortise)을 파고, 다른 쪽엔 돌기(Tenon)를 만들어 끼워 맞추는 고도의 목공 기법입니다.

아비도스에서 발견된 이 보트들은 길이가 무려 18~25m에 달했습니다. 

못 하나 없이 나무 조각을 맞추어 이 정도 크기의 배를 만들었다는 건, 당시 이집트가 이미 나일강 전체를 장악할 물류 인프라를 갖췄음을 의미합니다.

이 기술 덕분에 이집트는 거친 물살에도 견디는 대형 선박인 '아비도스 보트'를 건조할 수 있었고, 이는 곧 나일강 물류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고도로 정밀한 구리 도끼, 유리질 광택을 내는 파이앙스(Faience 점토 없이 모래로 만든 인공 보석) 공예, 정교한 상아 세공 기술(하마나 코끼리의 이빨을 깎아 미세한 기록을 남기는 정밀 조각술) 은 제1왕조가 이미 당대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링 역량을 보유했음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5. 호르-아하의 미스테리와 사후 세계: 아비도스 묘역 분석

아비도스 움 엘 카압(Umm el-Qa'ab)에 위치한 호르-아하의 묘역은 왕권의 신격화(Divinity of Kingship) 과정이 물리적으로 투영된 공간입니다.


묘역 구조 (B10, B15, B19)

호르-아하의 무덤은 세 개의 거대한 진흙 벽돌 방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는 선대보다 거대해진 규모로 파라오의 절대 권력을 상징합니다. 

특히 외벽을 궁전 전면 양식(Palace-façade)으로 장식하여 지상의 권위가 사후 세계에서도 지속됨을 나타냈습니다.


호르-아하 무덤 B10


순장(Retainer Sacrifice) 풍습의 학술적 의미

호르-아하 묘역 주변에서는 33명 이상의 하인과 여성을 포함한 순장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 이는 제1왕조 초기에만 나타나는 극단적인 풍습으로, 파라오가 신적 존재로서 사후에도 사회적 계층 구조를 유지함을 의미합니다.

• 함께 발견된 7마리의 젊은 사자 무덤은 왕권의 용맹함과 야생의 힘을 통제하는 초자연적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적 장치입니다.


호르-아하의 무덤에서는 수백 개의 도기 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이 안에는 세계 최초의 와인 중 일부가 담겨 있었습니다. 

항아리 겉면에는 포도밭의 위치와 생산 연도가 상형문자로 기록되어 있었죠. 

이는 제1왕조가 단순히 생존을 넘어, 고도의 미식 문화와 이를 관리하는 체계적인 원산지 표기 시스템까지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증거입니다.


사카라에서 출토된 호르 아하 왕의 원통형 토기


죽음과 관련된 신화적 고찰

마네토가 언급한 '하마에 의한 살해'나 들개 무리로부터 악어가 구해주어 크로코딜로폴리스를 세웠다는 전설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신화적 상징성에 가깝습니다. 

하마는 혼돈의 신 세트(Set)의 화신이며, 파라오는 질서의 신 호루스(Horus)의 대행자이므로, 이러한 전설은 통치 과정에서의 정치적 갈등이나 질서와 혼돈의 대립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비평적 검토가 필요합니다.


6. 호르-아하의 역사적 실재성과 초기 왕조의 위상

본 글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호르-아하는 문헌상의 전설적 창건자 '메네스'와 고고학적 실증 사이를 잇는 실질적인 국가 건설자였습니다. 

그가 메네스 본인이든, 혹은 문헌상 '테티'나 '이티'로 기록된 계승자이든 관계없이, 호르-아하의 재위 기간은 이집트가 단순한 지역 통합을 넘어 고도의 행정, 군사, 종교적 기틀을 마련한 결정적 시기였습니다.

특히 네이트호텝의 정치적 위상과 장부 맞춤 기술의 발명 등은 이 시기가 우리가 이전에 이해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기술적으로 진보한 시대였음을 시사합니다. 

초기 왕조 연구의 특성상 현재의 결론은 추가적인 발굴 결과에 따라 재해석될 수 있는 '잠정적 판단'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호르-아하가 구축한 강력한 파라오 권력의 상징들은 이후 3,000년 이집트 문명의 확고한 토대가 되었음을 확인하며 글을 마칩니다.



이 글은 고대 이집트 제1왕조 성립기와 파라오 호르-아하의 정체성을 주제로, 마네토의 문헌 기록·신왕국 왕명표와 상아판·암각화·묘역 등 고고학 자료를 교차 검토하여 재구성한 분석 글입니다.

초기 왕조 연구의 특성상 인물 동일성, 왕위 계승, 명칭 해석에는 학계 내 다양한 견해와 논쟁이 존재하며, 본문에서는 확정된 사실과 잠정적 해석을 구분해 서술했습니다.

만약 본문에서 사실 오류, 해석의 보완점, 최신 연구 성과나 누락된 사료가 있다면 댓글로 자유롭게 제보해 주세요.

또한 본문에서 제시한 가설과 해석에 대한 비판·반론·추가 의견을 포함한 토론 역시 적극 환영합니다.

이 공간이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사료와 해석을 함께 검증하고 확장해 나가는 열린 대화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formation of Egypt’s First Dynasty through a critical comparison of textual traditions and archaeological evidence, focusing on the identity of Hor-Aha. 

Ancient sources such as Manetho and New Kingdom king lists attribute Egypt’s unification to the legendary Menes, yet contemporary artifacts do not clearly attest to this name. 

Archaeological materials—including the Naqada ivory label and Abydos inscriptions—link Hor-Aha to symbols associated with royal authority, while debates persist over whether Menes corresponds to Narmer or Hor-Aha. 

The article argues that Hor-Aha played a decisive role in consolidating Egypt’s political, administrative, and religious systems. 

His reign saw territorial expansion into Nubia, the establishment of Memphis as an administrative center, religious integration across regions, technological advances in shipbuilding, and the institutionalization of divine kingship. 

Together, these developments positioned Hor-Aha as a foundational architect of early dynastic Egypt.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