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시간이 빚어낸 맛의 역사: 우리 특산물 이야기
음식에 담긴 시간의 흔적을 찾아서
우리가 무심코 먹는 '특산물'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특산물은 단순히 한 지역에서 나는 유명한 먹거리를 넘어, 그 땅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고단했던 삶과 빛나는 지혜가 응축된 살아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함께 맛의 시간 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시간 자체가 인삼을 숙성시키는 듯한 강원도 홍천의 험준한 산자락에서 시작해, 한 그릇에 두 개의 다른 영혼을 담아내는 전주의 북적이는 장터까지.
우리는 홍천, 강진, 영광, 나주, 성주, 제주, 양양, 벌교 그리고 전주를 거닐며 각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 어떻게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 그 깊고 흥미로운 발자취를 따라갈 것입니다.
특히 '진상품(進上品)'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최고의 영예 이면에 백성들의 땀과 눈물이 서려 있었던 역사의 양면성 또한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1. 500년의 시간을 품은 땅, 홍천의 뚝심 있는 특산물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는 홍천의 특산물 역사가 무려 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는 홍천의 명품들이 결코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홍천의 역사적 5대 특산물
『세종실록지리지』는 당시 홍천의 대표적인 토산물로 다음 다섯 가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인삼(人蔘)
• 잣(松子)
• 꿀(蜂蜜)
• 오미자(五味子)
• 옻(漆)
놀라운 점은 이 중에서 인삼과 잣이 오늘날 홍천을 대표하는 '5대 명품'(쌀, 한우, 찰옥수수, 인삼, 잣)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두 특산물이 반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조사를 거친 13개의 옛 문헌 모두에서 인삼뿐만 아니라 꿀과 오미자 역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홍천의 특산물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입니다.
홍천의 땅이 지닌 변함없는 가치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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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 인삼 |
인삼과 잣, 명품의 뿌리를 찾다
많은 이들이 인삼의 고장으로 풍기, 금산, 강화를 떠올리지만,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홍천의 인삼 재배 역사가 이들 지역보다 훨씬 깁니다.
당시 기록에 풍기, 금산, 강화에서는 인삼이 보이지 않는 반면, 홍천의 특산물로는 뚜렷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가진 일반적인 상식을 바로잡는 중요한 통찰입니다.
잣 역시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수많은 옛 문헌에 꾸준히 등장하는 홍천의 대표 특산물이었습니다.
이처럼 인삼과 잣이 오늘날 홍천의 명품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깊은 역사적 뿌리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자연이 증명하는 최적의 땅
"아무리 영농 과학이 발전했다 해도 여전히 농작물 재배에 있어서 1순위는 토양과 기후다."
이 말처럼, 결국 좋은 농작물은 땅의 힘에서 나옵니다.
홍천의 토양과 기후는 이미 500여 년 전부터 인삼, 잣, 오미자 같은 작물에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수많은 옛 읍지 기록들이 바로 그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500년의 유산이 바로 그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홍천의 사례는 자연과 역사가 어떻게 하나의 걸작을 빚어내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모든 특산물이 조화로운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들은, 강진의 산물처럼, 왕의 준엄한 명령과 백성의 눈물을 머금고 있기도 합니다.
2. 왕에게 바친 영광과 백성의 눈물: 강진의 진상품
진상(進上)이란 "지방의 특산물을 임금에게 바치던 일"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보는 화려한 수라상은 바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이 진상품들로 차려진 것이지요.
상상해 보십시오, 완벽한 전복 하나를 찾아 바다를 헤매는 어부를.
기쁜 잔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왕명이라는 거대한 무게 아래서 말입니다.
그 맛은 분명 전혀 달랐을 겁니다.
강진 땅의 풍요로움과 진상의 시작
강진은 북쪽으로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너른 바다를 품었으며, 기름진 들판까지 갖춘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그 덕에 예로부터 다양한 산물이 생산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진상품 목록으로 이어졌습니다.
1454년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된 강진의 주요 진상품(토공, 土貢)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가죽류: 여우가죽, 삵괭이가죽, 족제비털
• 식물류: 지초(지치), 작설차, 비자
• 해산물: 전복, 상곽(미역), 은어
• 약재류: 맥문동, 녹용
• 기타: 표고버섯, 석이버섯, 옻칠
시간이 흐르며 늘어난 백성의 부담
하지만 평화롭던 진상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백성들에게 큰 부담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약 80년 뒤인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진상품의 가짓수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추가된 주요 품목: 인삼, 유자, 송이버섯, 김, 오징어, 낙지, 숭어, 굴, 홍합, 해삼 등
본래 진상이란 임금에게 올리는 특별한 명예의 선물에 가까웠지만, 점차 정기적이고 체계화된 세금의 의무인 공물(貢物)의 성격을 띠게 된 것입니다.
이는 백성들의 부담이 예측 가능하게, 그리고 훨씬 더 혹독하게 변했음을 의미합니다.
제도의 그림자
조선 후기, 공물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쌀로 세금을 내게 한 대동법(大同法)이 시행되었지만, 진상만큼은 여전히 현물 납부로 유지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진상품이라는 이름 뒤에는 최고의 품질이라는 명예와 함께 백성들의 고통이라는 짙은 그림자가 함께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귀한 성찰을 남깁니다.
강진의 이야기는 '최고의 품질'이라는 명예 뒤에 숨겨진 '백성의 고통'이라는 역사의 양면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한 인물의 굽히지 않는 의지와 얽혀 특별한 이름을 얻게 된 영광 굴비의 탄생 비화를 들어볼 차례입니다.
3. 소금과 바람, 그리고 굽히지 않는 의지: 영광 굴비의 탄생 비화
"돈실러 가세, 돈실러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실러 가세"
옛 상인들이 부르던 이 노랫말은 영광 굴비가 예로부터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임금님 수라상에 오를 만큼 귀했던 영광 굴비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자겸의 이야기: 진실 혹은 거짓?
고려 시대의 권력자 이자겸이 왕위 찬탈에 실패하여 영광으로 귀양을 옵니다.
그곳에서 맛본 말린 조기에 감탄한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屈非)는 의미를 담아 '굴비'라는 이름을 붙여 임금에게 보냈다는 설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이 강렬한 이야기는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학자들은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고려나 조선의 어떤 역사 기록에서도 '굴비(屈非)'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옛 문헌에는 말린 조기를 '건석수어(乾石首魚)' 등으로 불렀던 기록이 남아있죠.
실제로는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리면 '굽비(굽어 있다)'라고 부르던 우리말이 한자화되었다는 설이 학계에서는 더 유력합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그 이야기가 가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음식에 인간의 꺾이지 않는 정신, 즉 ‘접시 위에 담긴 저항’의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는지에 대한 더 깊은 진실을 말해줍니다.
명성의 진짜 비밀: "조기는 같아도 굴비는 다르다"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이 말처럼, 영광 굴비의 특별함은 원재료인 조기가 아니라 법성포만의 독특한 가공법에 있습니다.
그 비밀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1. 특별한 소금
3년 이상 보관하여 쓴맛을 내는 간수를 완전히 빼낸 천일염만을 사용합니다.
이 덕분에 씁쓸하거나 불쾌한 짠맛 없이 깔끔한 감칠맛을 낼 수 있습니다.
2. 독특한 염장법 (섭장)
조기의 크기에 맞춰 소금에 절이는 시간을 일일이 조절하는 까다로운 방식입니다.
손이 매우 많이 가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법성포만의 비법입니다.
왕의 식탁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
영광 법성포가 굴비의 고장으로 명성을 굳힌 데에는 결정적인 지리적 이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 최대의 조창(漕倉, 세곡을 모아 운반하던 창고)인 '법성창'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성창 덕분에 영광 굴비는 한양의 왕실과 권세 있는 양반가에 신선하고 빠르게 공급될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다른 지역 굴비와 맛을 비교할 기회가 많아졌고, 그 결과 영광 굴비는 뛰어난 품질과 맛을 인정받아 최고의 명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영광 굴비는 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와 독보적인 비법, 그리고 지리적 이점이 결합하여 최고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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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성포 |
4. 하늘과 땅이 빚은 완벽함: 나주배 이야기
나주는 삼한시대부터 배를 재배해 온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장입니다.
1929년 조선박람회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그 명성을 널리 알렸고, 오늘날에는 전 세계로 수출되는 대한민국 대표 과일로 자리 잡았습니다.
나주배의 명성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나주배를 위한 최적의 자연 조건
나주배의 뛰어난 품질은 기적이라 할 만큼 배 재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기후와 토양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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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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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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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배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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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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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14.1℃, 생육기(4~10월) 평균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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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이 커지고 품질이 좋아지는 데 최적의 온도를 제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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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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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약 1,500㎜, 생육기(7~9월) 약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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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의 생육에 필요한 수분을 충분히 공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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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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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유역의 유기물이 풍부하고 배수가 잘되는 충적토(양토, 사양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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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깊게 뻗어 생산량과 품질을 극대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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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하늘과 땅이 내려준 천혜의 조건은 나주가 '배의 고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오랜 역사와 축적된 기술
완벽한 자연 조건 위에 나주 농업인들의 오랜 재배 역사와 경험이 더해졌습니다.
세대를 거쳐 축적된 수준 높은 재배 기술은 나주배만의 독특한 품질을 완성시켰습니다.
바로 이 기술 덕분에 나주배는 "연하고 과즙이 풍부하며 당도가 높은" 최고의 맛을 자랑하게 된 것입니다.
나주배가 천혜의 자연과 인간의 노력이 빚어낸 완벽한 합작품이라면, 성주참외는 전통을 넘어 새로운 품종과 혁신적인 전략으로 '국민 과일'의 자리에 오른 현대적인 성공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성주로 떠나보겠습니다.
5. '국민 과일'의 탄생: 성주참외의 성공 전략
참외는 삼국시대부터 재배된 우리 민족의 오랜 과일입니다.
고려청자 병의 아름다운 형태로, 신사임당의 그림 속 탐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할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참외' 하면 누구나 '성주'를 떠올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성공의 씨앗, '금싸라기'의 등장
1970년대까지만 해도 참외 시장은 여러 재래종과 일본에서 도입된 '은천참외'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성주참외 역사의 결정적 전환점은 1984년에 찾아왔습니다.
바로 "당도가 높고 육질이 아삭아삭해 우리 입맛에 맞았던" '금싸라기은천참외'라는 새로운 품종이 보급된 것입니다.
이 품종이야말로 오늘날의 성주참외를 있게 한 진정한 주역이었습니다.
성공을 굳힌 세 가지 결정적 전략
성주는 비옥한 토양과 좋은 기후라는 자연적 이점을 가졌지만, 오늘날의 명성은 여기에 농민과 관계 기관의 체계적인 노력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성주참외를 지역 특산물을 넘어 전국적인 브랜드로 만든 세 가지 핵심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리적표시제 등록 (2005년)
국가가 성주참외의 지리적 특성과 우수한 품질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는 소비자들이 '성주참외' 브랜드를 믿고 구매할 수 있는 신뢰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2. 참외산업특구 지정 (2006년)
생산 기술을 개발하고 유통 구조를 개선하는 등 참외 산업 전반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3.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건립 (2007년)
산지에서 직접 경매를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 유통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이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성주참외는 품종 혁신과 똑똑한 브랜딩 전략을 통해 성공한 현대적 특산물의 모범 사례입니다.
6. 두 개의 밥상, 하나의 도시: 전주의 맛과 멋
전주는 후백제의 도읍이었고, 조선왕조의 본향(本鄕)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덕분에 예로부터 '멋과 맛의 고향'으로 불리며 독특한 음식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특히 전주를 대표하는 두 음식,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서로 다른 계층의 삶과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양반의 식탁에서 탄생한 '전주비빔밥'
전주비빔밥의 여러 유래 중에서도, 조선시대 관찰사 같은 고관대작들이 즐기던 별미였다는 '궁중 음식설'에 가장 가깝게 발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주에서 나는 풍부한 식재료(전주 10미)와 대대로 이어져 온 부녀자들의 뛰어난 음식 솜씨가 어우러져, 맛은 물론 눈으로도 즐기는 화려한 음식이 탄생했습니다.
이는 음식상을 통해 가문의 품격을 드러내고자 했던 양반 문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민의 시장에서 태어난 '전주콩나물국밥'
반면, 콩나물국밥의 뿌리는 조선 후기 활기 넘치던 전주 남부시장의 주막거리 음식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6대 시장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거대했던 남부시장은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들로 늘 북적였습니다.
그 바쁜 상인들과 서민들이 고된 하루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빠르고 간편하게 먹었던 '장국밥' 형태의 음식이었습니다.
평범해 보이지만 전주의 좋은 물로 길러낸 아삭하고 고소한 콩나물을 사용했기에 그 맛이 특별할 수 있었습니다.
콩나물국밥 한 그릇에는 거대 상업 중심지의 활기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진하게 녹아 있습니다.
두 음식에 담긴 전주의 정신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한 도시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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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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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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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콩나물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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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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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및 관료층의 고급 별미 (궁중 음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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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및 상인들의 간편한 시장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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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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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재료의 조화, 멋과 풍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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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재료 본연의 맛, 삶의 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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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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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품격을 드러내는 '채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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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함 속에 깊은 맛을 내는 '비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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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전주는 화려한 양반의 맛과 소박한 서민의 맛을 모두 아우르는 진정한 맛의 고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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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비빔밥 |
7. 호랑이보다 무서운 달콤한 유혹: 상주 곶감의 효심
"곶감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전래동화 속 호랑이를 울렸던 이 달콤한 명약은 사실 경북 상주의 척박한 땅이 빚어낸 지혜의 산물입니다.
상주는 예로부터 쌀, 누에고치, 그리고 곶감이 유명해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불렸습니다.
하늘이 내린 500년의 선물
상주 곶감의 역사는 1468년 『예종실록』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즉위 기념으로 상주 곶감을 진상했다"는 기록은 이미 500년 전부터 상주 곶감이 조선 최고의 간식이었음을 증명합니다.
특히 상주의 '둥시(곶감용 감 품종)'는 탄닌 함량이 높고 수분이 적당해 곶감을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칼끝에서 피어난 주황빛 꽃
곶감은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 24절기 중 하나) 무렵, 농민들은 날카로운 칼로 감 껍질을 깎아냅니다.
살얼음이 어는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 감을 내걸면,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얼기를 반복하며 속살이 쫀득해집니다.
이 고된 과정은 조상님 제사상에 가장 좋은 것을 올리려 했던 '효(孝)'의 마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상주 곶감 특유의 하얀 가루인 시설(枾雪: 감 서리)은 인위적인 설탕이 아니라 시간과 바람이 만들어낸 천연의 단맛입니다.
8. 거대한 바다의 생명력을 삼키다: 기장 미역의 관찰
산모의 방에 놓인 뜨끈한 미역국 한 그릇.
우리 민족에게 미역은 태어남과 동시에 마주하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그중에서도 동해의 거친 물살이 빚은 '기장 미역'에는 경이로운 탄생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고래가 가르쳐준 지혜
(전승)에 따르면 당나라의 서견(유학자)은 그의 저서 『초학기』에 흥미로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뜯어 먹으며 산후의 피를 맑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이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바다의 주인인 고래의 생존 본능을 인간이 세심하게 관찰하여 의학적 지혜로 승화시킨 장면입니다.
검은 비단, 임금의 수라상에 오르다
기장 앞바다는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이곳의 미역은 물살이 세고 일조량이 풍부해 잎이 좁고 탄력이 넘칩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기장현의 특산물로 미역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말렸을 때 검은 빛이 돌고 물에 넣으면 금방 파릇하게 살아나는 기장 미역은 그 품질을 인정받아 임금님의 수라상에 '검은 비단'처럼 진상되었습니다.
9. 목숨을 건 바다 건너의 진상: 제주 귤의 눈물
겨울철 방안을 가득 채우는 상큼한 귤 향기.
오늘날 우리에게는 흔한 과일이지만, 조선 시대 제주 귤은 임금에게나 허락된 '노란 보석'이자 백성들에게는 '고통의 열매'였습니다.
황감제(黃柑製): 유생들을 위한 특별한 시험
조선 시대 한양에 제주 귤이 도착하면 궁궐에서는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임금은 귤이 도착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성균관 유생들에게 특별 과거 시험을 치르게 하고 상으로 귤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를 '황감제'라 불렀습니다.
귤 하나를 얻기 위해 전국의 인재들이 붓을 들었으니, 당시 귤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게 합니다.
번호 매겨진 나무, 백성의 탄식
그러나 이 화려함 이면에는 비극적인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관가에서는 귤나무 한 그루마다 번호를 매기고 열매의 개수까지 일일이 장부에 적어 감시했습니다.
태풍에 귤이 떨어지거나 도둑을 맞으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농민의 몫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백성들이 귤 진상의 고통을 피하려 나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죽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제주 귤은 가장 달콤한 맛 속에 가장 쓴 역사의 아픔을 머금고 우리 식탁으로 건너온 것입니다.
이름 속에 숨겨진 황제의 열매: 귤(橘)의 정체
우리는 흔히 '귤'이라 부르지만,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이 노란 과일만큼 이름이 많은 산물도 드뭅니다.
그 이름 하나하나에는 당시 사람들이 이 과일을 얼마나 신비롭게 여겼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 왜 '귤(橘)'이라 불렀을까?
(어원) 귤이라는 글자는 나무 목(木)과 송곳니/찌를 휼(矞)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귤나무의 날카로운 가시를 뜻하기도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상서로운 구름이 피어오르는 나무'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귤은 '군자의 열매'로 통했습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알차고, 겨울의 추위를 견디며 황금빛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귤을 단순히 과일이 아닌, '땅에서 열리는 황금'이라 칭송하며 그 이름을 귀하게 불렀습니다.
2. 감귤, 생귤, 밀감... 그 복잡한 이름들의 속사정
우리가 혼용해 쓰는 이름들에도 제각기 다른 뜻이 숨어 있습니다.
감귤(柑橘): 가장 흔히 쓰이는 이 용어는 사실 '감(柑)'과 '귤(橘)'의 합성어입니다.
'감'은 껍질이 두껍고 당도가 높은 종류를, '귤'은 껍질이 얇고 신맛이 강한 종류를 통칭합니다.
즉, 제주에서 나는 모든 시트러스류를 아우르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이름입니다.
생귤(生橘): 말 그대로 '갓 딴 싱싱한 귤'을 뜻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제주에서 한양까지 귤을 운반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중간에 썩거나 마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가공하지 않은 신선한 상태의 귤을 '생귤'이라 부르며 최고급품으로 쳤습니다.
밀감(蜜柑): 이름에 꿀 밀(蜜)자가 들어갑니다.
(어원) "꿀처럼 달콤한 감귤"이라는 뜻이죠.
흔히 일본식 표현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조선 전기 기록인 『성종실록』에도 등장할 만큼 유서 깊은 이름입니다.
3. 사라진 이름, '금귤'과 '유자'
조선 시대 진상 목록에는 지금은 보기 힘든 이름들도 가득합니다.
알이 아주 작은 '금귤(金橘)', 향이 독보적인 '유자(柚子)' 등은 각각 수라상 위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어떤 것은 약재로, 어떤 것은 임금의 기운을 돋우는 귀한 디저트로 변신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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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감귤 |
10.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어난 붉은 보석: 영양 고추
오늘날 한국인의 매운맛을 책임지는 고추.
하지만 고추가 우리 땅에 들어온 지는 불과 400여 년 남짓입니다.
그 중심에는 경북 영양의 험준한 산세가 만든 '매운 드라마'가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함께 건너온 낯선 열매
(어원: 고초(苦椒))라 불리던 고추는 임진왜란(1592년) 당시 일본을 거쳐 들어온 외래종이었습니다.
처음엔 독초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영양의 깊은 산골은 이 낯선 작물에게 최고의 요람이 되어주었습니다.
밤낮의 기온 차가 극심한 영양의 기후는 고추의 당도를 높이고 껍질을 두껍게 만들어, 입안이 얼얼하면서도 끝맛은 달콤한 '명품 고추'를 탄생시켰습니다.
여인들의 굽은 등에서 익어가는 색 영양 고추의 붉은빛은 농민들의 눈물겨운 정성으로 완성됩니다.
고추는 병충해에 약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작물입니다.
뙤약볕 아래서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하는 고된 노동의 결실이죠.
"영양 고추 색은 여인들의 연지보다 붉다"는 말은 그만큼의 노고가 서려 있다는 뜻입니다.
매운맛의 대명사, '청양고추'라는 이름의 전쟁
영양의 붉은 고추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매운맛, '청양고추'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 속에는 두 도시의 자존심을 건 흥미로운 비화가 숨어 있습니다.
청양(靑陽)인가, 청양(靑英)인가?
청양고추의 탄생을 두고는 두 가지 이야기가 팽팽하게 맞섭니다.
(논쟁) 첫 번째는 충남 청양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고, 두 번째는 경북 청송과 양양(영양의 오기 혹은 영양의 별칭)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는 설입니다.
실제 기록에 따르면, 1983년 유일웅 박사가 제주산 고추와 태국산 고추를 잡종 교배하여 새로운 품종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경북 청송과 영양 지역에서 재배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기에, 두 지역의 앞 글자를 따서 '청양(靑陽)'이라 명명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충남 청양군 역시 1968년부터 고추기념제를 열 만큼 고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오늘날까지도 이 이름은 매운맛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논쟁거리가 됩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증명
청양고추는 일반 고추보다 캡사이신 함량이 몇 배나 높지만, 단순히 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입안을 툭 치고 올라오는 깔끔한 매운맛 뒤에 감도는 단맛이 일품이죠.
전쟁통에 건너온 낯선 열매가 우리 땅의 기운을 만나, 이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K-매운맛의 정점인 '청양고추'로 진화한 셈입니다.
11. 갯벌의 전사들이 지켜낸 자존심: 벌교 꼬막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이자, 전라도 사람들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벌교 꼬막.
"벌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말의 이면에는 사실 꼬막을 캐기 위해 평생 갯벌을 누빈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이 담겨 있습니다.
뻘배 위에서 펼쳐지는 사투
벌교 꼬막의 명성은 여자만(汝自灣: 고흥·여수·순천·보성으로 둘러싸인 바다)의 깊고 차진 갯벌에서 나옵니다.
꼬막은 양식이 되지 않아 사람이 직접 '뻘배'를 타고 들어가 하나하나 채취해야 합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 속에서 온몸의 근육을 다 써야만 얻을 수 있는 귀한 산물입니다.
벌교 사람들의 강인한 힘은 바로 이 거친 갯벌을 이겨내며 길러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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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교 사람들의 고된 노동 |
수라상까지 올라간 '바다의 인삼'
꼬막은 그 맛이 담백하고 영양이 풍부해 예로부터 조개류 중 유일하게 제사상에 올랐으며, 임금님의 수라상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논쟁)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벌교 꼬막이 유독 맛있는 이유는 섬진강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며 미네랄이 풍부해진 벌교 갯벌의 특수성 덕분입니다.
한 입 깨물면 터져 나오는 짭조름한 바다의 피, 그것은 벌교가 품은 야성적인 맛입니다.
그런데 왜 이 조개는 '꼬막'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우리 조상들의 세심한 관찰력이 담긴 두 가지 유래가 전해집니다.
"작고 막 생겼다?" 고막에서 꼬막으로
(어원) 꼬막의 옛 이름은 '고막'입니다.
조선 시대 문헌인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고막(庫幕)'이라는 한자어로 기록되어 있죠.
민간에서는 껍데기의 부채꼴 줄무늬가 마치 옛집의 '고막(방의 벽 밑부분에 쌓은 낮은 벽)'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작지만 집을 지탱하는 벽처럼 단단하고 야무지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며 발음이 강해져 오늘날의 '꼬막'이 되었습니다.
꼬마처럼 작고 귀한 조개
또 다른 재미있는 해석으로는 '꼬마'와 관련이 있다는 설입니다.
(전승) 다른 조개들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그 속에 담긴 맛과 영양은 어떤 대형 조개보다 알차기에 '작은(꼬마) 막조개'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전라도 방언에서는 작고 귀여운 것을 지칭할 때 '꼬막지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꼬막처럼 작지만 속이 꽉 차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2. 1,000년의 시간을 견딘 향기: 양양 송이버섯
가을 산의 귀족, '황금 송이'라 불리는 양양 송이는 인간의 기술로 재배할 수 없는, 오직 자연만이 허락한 선물입니다.
소나무의 영혼을 훔치다
송이는 20년 이상 된 살아있는 소나무 뿌리 끝에서만 자라납니다.
전승에 따르면 "송이는 신선들이 먹는 음식이며, 그 향기는 천 년을 간다"고 했습니다.
양양의 화강암 토양과 동해의 서늘한 해풍은 송이가 자라기에 세계 최고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흙을 뚫고 갓 올라온 송이 한 뿌리에는 수십 년을 버틴 소나무의 정기와 땅의 기운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황금보다 귀한 짧은 조우
송이 채취 기간은 1년에 단 한 달 남짓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양양의 산꾼들은 새벽 안개를 뚫고 산을 오릅니다.
송이는 자라는 곳을 자식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귀합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양양의 주요 진상품으로 송이가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에도 송이를 찾아 산을 헤매던 백성들의 고단함과 왕실의 미식이 교차하던 순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식탁에 새겨진 땅의 시간과 사람의 문장을 맛보다
우리는 오늘 짧은 여행을 통해 특산물 한 그릇에 얼마나 깊고 다채로운 시간이 농축되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홍천의 500년 묵은 인삼과 잣에서 시작된 여정은 왕에게 바치던 강진의 눈물겨운 해산물로, 이자겸의 꺾이지 않는 의지가 담긴 영광 굴비로 이어졌습니다.
하늘과 땅이 빚은 나주배와 농민의 혁신이 만든 성주참외, 그리고 전주의 두 얼굴을 닮은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우리 음식 문화의 풍요로움을 증명했습니다.
여기에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어난 영양·청양의 붉은 고추, 갯벌의 사투를 견디며 단단해진 벌교 꼬막, 천 년 소나무의 정기를 훔친 양양 송이의 향기가 더해졌습니다.
또한 임금의 총애와 백성의 탄식이 교차했던 제주의 귤, 거대 고래의 생명력을 관찰해 낸 기장 미역, 그리고 겨울바람과 효심이 빚어낸 상주 곶감까지.
이 모든 산물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우리 땅이 써 내려간 한 권의 거대한 역사서였습니다.
사실 우리 땅 구석구석에는 오늘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여전히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거친 파도를 견딘 울릉도의 명이와 오징어, 남도의 봄을 알리는 광양의 매실, 그리고 척박한 고원을 지켜온 평창의 메밀까지.
미처 이 지면에 다 담아내지 못한 전국 각지의 수많은 특산물과 그 고향의 농민들께 지극한 미안함과 존경을 전합니다.
우리 땅의 모든 맛에는 저마다의 주인공과 저마다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비록 이번 여행에서 모든 역사를 훑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름 모를 작은 산물 하나에도 누군가의 일생과 땅의 기억이 서려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미처 못다 한 맛의 역사들은 여러분의 식탁 위에서, 그리고 우리의 다음 여행길에서 다시 하나씩 풀어내 보겠습니다.
우리 땅이 빚어낸 이 위대한 유산들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게 지켜주길 바라며 이 여정을 마칩니다.
이 글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공개된 옛 문헌에 나타난 “토산·진상” 기록과,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다만 음식의 탄생 비화처럼 기록으로 확정하기 어려운 대목은 (전승)으로,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논쟁)으로, 말의 뿌리를 다룬 부분은 (어원)으로 표시해 독자 판단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또한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과 감정의 리듬을 살린 서술을 사용했지만, 특정 지역이나 인물에 대한 단정은 피하고 “사료가 말하는 범위”와 “이야기가 전하는 범위”를 구분하려 노력했습니다.
읽는 동안 떠오르는 지역의 기억이나, 우리 집 밥상에 얽힌 작은 사연이 있다면 함께 떠올려 주세요.
A time-travel through Korean specialties, this piece shows how taste is made by land and history.
Hongcheon’s ginseng and pine nuts in early gazetteers prove long continuity between climate and reputation.
In Gangjin, royal tribute goods grow from honor into harsh obligation, exposing the people’s burden behind a glittering table.
Yeonggwang gulbi is explained through aged salt, careful curing, and port logistics; its exile-name story is kept as tradition, not proof.
Naju pears and Seongju melons show how ideal soil, skill, and modern certification build nationwide trust.
Jeonju’s bibimbap and kongnamul-gukbap reflect elite and market life in one bowl.
From Sangju dried persimmons and Gijang seaweed to Jeju tangerines, Yeongyang chili, Beolgyo cockles, and Yangyang pine mushrooms, the journey ends with one theme: food is a living archive of labor, season, and survival.—on our table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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