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3세: 바다 민족을 막아낸 ‘마지막 위대한 파라오’와 하렘 음모 (Ramesses III)


람세스 3세: 지중해를 구원한 영웅과 붕대 속에 가려진 비극적 진실


제1장: 혼란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희망 - 무너진 제국을 일으킨 ‘사막의 사자’

1. 거인의 그림자가 저문 자리

태양신 라(Ra: 이집트의 창조신이자 태양신)의 축복이 영원할 것 같던 이집트의 황금기가 저물고 있었다. 

불멸의 파라오라 칭송받던 람세스 2세(제19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파라오)가 서거한 후, 이집트는 마치 길을 잃은 거인처럼 비틀거렸다.


그의 뒤를 이은 메르넵타(람세스 2세의 13번째 아들)는 이미 환갑을 넘긴 노인이었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왕실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왕자들은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눴고, 궁정의 내시와 관리들은 마아트(Ma'at: 우주의 질서와 정의) 대신 자신의 주머니를 채울 탐욕을 선택했다. 

제19왕조의 마지막은 처참했다. 

이름조차 희미한 군주들이 스쳐 지나갔고, 심지어 이방인 출신의 관리인 바이(Bay: 시리아 출신의 권신)가 실권을 휘두르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백성들은 굶주렸다. 

나일강의 범람은 불규칙해졌고, 사막 너머에서는 이방인들의 약탈이 잦아졌다. 

사람들은 탄식했다. 

"위대한 람세스의 피는 어디로 갔는가? 누가 우리를 이 어둠에서 구원할 것인가?"


2. 세트나크트, 불길 속에서 일어서다

이 혼돈을 끝낸 것은 혜성처럼 등장한 한 사나이, 세트나크트(Setnakhte: 제20왕조의 창건자)였다. 

그의 출신은 베일에 싸여 있었으나, 그는 혼란을 잠재울 강력한 군사력과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칼과 방패로 이집트를 유린하던 이방 세력과 부패한 귀족들을 쓸어버렸다.


"나는 신들의 선택을 받았다. 무너진 신전을 다시 세우고,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으리라."


세트나크트는 불과 2~3년의 짧은 통치 기간이었지만, 제20왕조의 초석을 단단히 다졌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아버지를 도와 전장을 누비던 젊은 사자, 람세스 3세(Ramses III)가 있었다. 

람세스 3세는 아버지가 피로 일궈낸 평화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넘어, 위대한 선대왕인 람세스 2세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거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다.


람세스 3세의 무덤 KV11의 벽화


3. 즉위: 기원전 1187년의 새벽

기원전 1187년, 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람세스 3세는 마침내 상하 이집트의 이중관(Pschent: 상하 이집트 통합의 상징)을 썼다. 

하지만 즉위식의 화려한 금빛 뒤에는 짙은 먹구름이 깔려 있었다.


당시 지중해 세계는 '청동기 시대의 대붕괴'라는 유례없는 대재앙을 맞이하고 있었다. 

수백 년간 지배자로 군림하던 히타이트(Hittite: 소아시아의 강대국) 제국이 하루아침에 멸망했고, 미케네(Mycenae: 고대 그리스 문명)의 궁전들은 불타올랐다.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난 수만 명의 '이주민 연합군'이 동방의 모든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며 남진하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 어떤 땅도 그들의 손길 앞에 버틸 수 없었다'고 할 정도로 바다 민족의 진격은 거침없었다. 

지중해의 교역로는 끊겨 세상은 암흑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람세스 3세는 즉위 직후 보고를 받았다. 

"파라오여, 리비아인들이 서쪽 국경을 넘보고 있으며, 북쪽 바다 너머에서는 정체불명의 선단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4. 사자의 포효, 첫 번째 시험대

람세스 3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즉위 5년 차에 서쪽 국경을 침범한 리비아 연합군을 상대로 첫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리비아인들은 이집트 내정의 혼란을 틈타 삼각주 지대를 차지하려 했다.


람세스 3세는 직접 전차를 몰고 전두지휘했다. 

"보라! 나의 화살은 신의 번개와 같고, 나의 전차 바퀴는 적들의 뼈를 으스러뜨릴 것이다!"


그의 군대는 압도적이었다. 

리비아인들은 파라오의 강력한 돌파력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이 승리는 단순한 군사적 성과를 넘어, '약해진 이집트'를 조롱하던 주변국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이었다. 

람세스 3세는 이 승리를 통해 군의 충성을 확보했고, 백성들에게는 '다시 강한 파라오가 돌아왔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5. 거대한 폭풍을 예감하며

하지만 리비아와의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람세스 3세는 알고 있었다. 

진짜 위협은 서쪽 사막이 아니라, 푸른 지중해 너머에서 오고 있다는 것을.


그는 전령을 보내 나일강 하구의 모든 요새를 보수하고, 전국의 대장간에서 청동 무기를 쉼 없이 두드리게 했다. 

파라오는 메디네트 하부(Medinet Habu: 람세스 3세의 장제전)의 초석을 다지며 신들에게 기도했다.


"내가 이 땅을 지켜낸다면, 나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호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나 패배한다면, 이집트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메디네트 하부 유적지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미 돌기 시작했다. 

바다 위로 수천 척의 돛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훗날 역사가들이 '바다 민족'이라 부르게 될 공포의 무리가 이집트의 숨통을 노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람세스 3세는 검을 고쳐 잡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신왕국의 마지막 불꽃이 가장 밝게 타오를 준비를 마친 순간이었다.


제2장: 이집트의 마지막 수호자 - '바다 민족'과의 대전쟁

1. 지평선 끝에서 밀려오는 죽음의 그림자

기원전 1175년경, 동지중해의 하늘은 비명과 연기로 가득 찼다. 

수백 년간 지배해온 질서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철기 무기를 앞세운 히타이트의 전차부대도, 화려함을 자랑하던 미케네의 궁전도 이름 모를 침략자들의 발길 아래 잿더미가 되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역사는 그들을 바다 민족(Sea Peoples)이라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한 해적이 아니었다. 

펠레세트(Peleset: 훗날의 블레셋), 테케르(Tjeker), 셰켈레시(Shekelesh) 등 여러 부족으로 구성된 이 거대한 연합군은 가뭄과 기근을 피해 고향을 떠난 '무장한 이주민'이었다. 

그들의 배에는 전사들뿐만 아니라 아내와 자식, 가축, 그리고 모든 가산집물이 실려 있었다. 

돌아갈 곳이 없는 그들에게 후퇴란 없었다. 

오직 정복과 정착뿐이었다.


전령이 파라오 람세스 3세의 어전으로 달려와 숨 가쁘게 외쳤다. 

"위대한 파라오시여! 시리아의 아무루가 무너졌습니다! 적들은 이미 가나안에 거점을 마련하고 우리 국경을 향해 육지와 바다 양면에서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숫자는 셀 수조차 없으며,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침묵만이 남습니다!"


바다 민족을 묘사한 이집트 벽화


2. 람세스의 결단: "나일강을 적들의 무덤으로 만들라"

람세스 3세는 지도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는 적들이 단순히 약탈하고 떠날 자들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들은 이집트라는 거대한 옥토를 통째로 삼키려 하고 있었다.


"적들은 바다 위에서는 무적이다. 하지만 나일강은 우리의 땅이다."


람세스는 이집트 전역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평민부터 장인까지 모든 남성이 징집되었고, 나일강 하구인 삼각주 지대의 모든 수로는 요새화되었다.

그는 적들을 이집트 본토의 좁은 수로 안으로 유인하기로 했다. 

적들의 거대한 함대가 기동력을 발휘할 수 없는 좁고 얕은 물길, 그곳이 바로 파라오가 설계한 사지(死地)였다.


오늘날의 나일 삼각주


3. 육지전: 자히(Djahi)의 혈투

전쟁은 두 곳에서 동시에 터졌다. 

먼저 육지였다. 

가나안 국경 근처의 자히(Djahi: 팔레스타인 남부 지역)에서 이집트 보병대와 바다 민족의 선봉대가 충돌했다.

적들은 위협적이었다. 

그들은 커다란 깃털 장식이 달린 투구를 쓰고, 긴 칼과 원형 방패를 휘두르며 광기 어린 기세로 돌진했다. 

소달구지를 탄 채 뒤따라오는 그들의 가족들은 이 싸움이 곧 생존을 건 이주임을 상징했다.


람세스 3세는 전차 군단을 이끌고 직접 전장에 뛰어들었다. 

"신들의 아들이여, 화살을 멈추지 마라! 이집트의 흙 한 줌도 저들의 발에 밟히게 해서는 안 된다!"


이집트의 정예 궁수 부대가 하늘을 뒤덮는 화살비를 퍼부었다. 

바다 민족의 무모한 돌격은 파라오의 치밀한 방진 앞에 막혔다. 

육지전에서의 승리는 값진 것이었으나, 파라오는 기뻐할 틈이 없었다. 

진짜 본대는 바다를 통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라오의 본진을 호위하는 군단 중에는 기묘한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이집트인의 민머리 대신 소의 뿔이 달린 독특한 투구를 썼고, 나일강의 곡도(Khopesh: 반달 모양의 칼)가 아닌 길고 곧은 장검을 휘둘렀다. 

바로 셔던(Sherden: 바다 민족의 일원이자 이집트의 정예 용병)족이었다.


이들은 원래 바다 민족의 선봉대였으나, 과거 람세스 2세에게 패배한 뒤 파라오의 강력함에 반해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었다. 

람세스 3세는 이들을 버리는 대신 자신의 심장을 지키는 근위대로 삼는 파격을 선보였다.


"동족의 피를 흘릴 준비가 되었는가?" 

파라오의 물음에 그들은 장검을 높이 들며 포효로 답했다.


실제로 바다 민족과의 결전에서 셔던 용병들은 잔인할 정도로 용맹했다. 

그들은 적들의 전술과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동족의 심장에 칼을 꽂는 그들의 활약은 바다 민족에게 심리적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파라오는 이들을 통해 승리를 쟁취했을 뿐만 아니라, 이방의 힘을 흡수해 제국의 방패로 삼는 고도의 통치술을 증명해 보였다.


4. 사상 최대의 해전: 나일 삼각주의 함정

마침내 바다 민족의 거대한 함대가 나일강 하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천 개의 노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는 대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 같았다. 

적들은 나일강 입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승리를 확신하며 강 안쪽으로 깊숙이 진입했다.


하지만 그것은 람세스가 놓은 덫이었다. 

강 양옆의 갈대숲과 진흙 언덕 뒤에는 수만 명의 이집트 궁수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적 함대가 가장 취약한 위치에 도달했을 때, 파라오의 신호탄이 하늘을 갈랐다.


"지금이다! 쏴라!"


해안가에 매복해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 올렸다. 

동시에 강둑에 설치된 대형 발석기들이 거대한 돌덩이를 쏟아냈다. 

좁은 수로에 갇힌 바다 민족의 배들은 서로 엉켜 붙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 람세스가 준비한 이집트 함대가 나타났다. 

바다 민족이 좁은 수로에서 갈팡질팡할 때, 이집트 배들은 먹잇감을 노리는 악어처럼 빠르게 파고들었다. 

여기서 람세스의 비밀 병기가 등장했다. 

이집트 배의 선수에는 '까마귀 발'이라 불리는 거대한 청동 갈고리가 장착되어 있었다.

함성이 울리자 수천 개의 갈고리가 적함의 갑판과 돛대에 박혔다. 

적의 배가 도망치지 못하게 묶어버린 뒤, 이집트 군은 배 위에 긴 판자를 깔아 '다리'를 만들었다. 

바다 위가 순식간에 육지로 변했다.


물 위는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수영을 못 하는 바다 민족 전사들은 무거운 갑옷 때문에 강바닥으로 가라앉았고, 간신히 해안으로 기어 올라온 자들은 매복해 있던 이집트 병사들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메디네트 하부의 벽화는 이 광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들은 그물에 걸린 새처럼 사로잡혔고, 그들의 배는 산산조각이 나 강물 위를 떠다녔다.'


5. 승리의 찬가와 숨겨진 대가

람세스 3세는 전 지구적 재앙이었던 '청동기 시대의 붕괴'로부터 이집트를 지켜낸 유일한 지도자가 되었다. 

히타이트와 미케네가 지도에서 사라질 때, 이집트만은 살아남았다. 

그는 명실상부한 '마지막 위대한 파라오'였다.


전쟁이 끝난 후, 람세스는 수천 명의 포로를 노예로 삼아 신전 건설에 투입했다. 

특히 펠레세트족의 일부는 가나안 해안가(오늘날의 가자 지구)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받는 대신 이집트의 용병으로 복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승리의 영광 뒤에는 거대한 청구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연이은 대전쟁으로 국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수많은 젊은이가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해 농사지을 손이 부족해졌다. 

무엇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던 람세스 3세의 건강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승리를 기념하는 거대한 장제전을 세우며 신들에게 감사했지만, 정작 그 신전 안에서 배고픔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영광의 불꽃이 가장 밝게 빛나던 그 순간, 이집트 제국을 뿌리째 뒤흔들 내부의 폭풍이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3장: 파라오의 권위에 도전하다 - 역사상 최초의 파업

1. 승전보 뒤에 찾아온 차가운 그림자

람세스 3세의 통치 초기는 신화적인 풍요로 가득했다. 

파라오는 제국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전설 속의 황금 땅, 푼트(Punt: 오늘날 소말리아 인근으로 추정되는 무역 거점)로 대규모 원정대를 파견했다.


수개월의 항해 끝에 돌아온 함대에는 이집트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했다. 

눈부신 순금, 거대한 코끼리 상아, 그리고 신들의 향기라 불리는 '몰약(Myrrh)' 나무가 통째로 실려 왔다. 

람세스는 이 보물들을 아문 신전의 앞마당에 쌓아두고 백성들에게 선포했다.


"보라! 신들께서 여전히 이집트를 축복하고 계신다. 우리의 창고는 넘칠 것이며, 굶주림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것이다."


당시 테베의 거리는 몰약의 향기로 진동했고, 백성들은 파라오가 가져온 평화와 번영을 찬양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축제는 폭풍 전야의 고요였다. 

푼트에서 가져온 황금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고, 몰약의 향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기상 이변이라는 대재앙이 제국의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가장 높이 올라갔던 번영의 순간은, 곧 닥쳐올 파업과 기근의 고통을 더욱 뼈아프게 만들 뿐이었다.


바다 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지 수년이 흘렀다. 

이집트의 거리는 한때 승리의 환호성으로 가득했지만, 이제 그 자리를 메운 것은 무거운 침묵과 불길한 속삭임이었다.


전쟁은 끝났으나 평화는 공짜가 아니었다. 

람세스 3세는 신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신전 건립과 축제를 이어갔다. 

하지만 국고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연의 신들마저 이집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의 헤클라(Hekla 3) 화산 폭발로 추정되는 거대한 기상 이변이 전 세계를 덮쳤고, 그 여파로 나일강의 수위가 급감했다. 

곡창지대는 갈라졌고,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제국은 겉보기에 화려했으나, 속은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의 거대한 무덤과 같았다.


2. 데이르 엘-메디나: 신의 손을 가진 사람들

테베 서안의 조용한 골짜기, 데이르 엘-메디나(Deir el-Medina: 왕릉 건설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에는 파라오의 영원한 안식처를 만드는 최고의 장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평범한 노예가 아니었다. 

복잡한 상형문자를 새기고 찬란한 벽화를 그리는 그들은 국가로부터 직접 배급(곡물, 기름, 생선 등)을 받는 특권 계층이자 전문 기술자들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1159년, 약속된 날짜가 지나도 배급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 

아이들은 굶주림에 울부짖었고, 집안의 항아리는 바닥을 보였다. 

관리들은 "조금만 기다려라, 곧 올 것이다"라는 무책임한 말만 되풀이하며 자신들의 창고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파라오의 신성한 무덤을 조각하던 정(Chisel)이 멈췄다. 

그것은 단순히 작업의 중단이 아니라,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이집트 질서에 대한 거부였다.


3. "우리는 굶주렸다!" : 광장의 함성

즉위 29년 차의 어느 아침, 장인들은 연장을 내려놓고 마을의 담장을 넘었다. 

그들은 파라오의 장제전인 메디네트 하부로 향했다. 

그들의 손에는 무기 대신 비어 있는 배급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굶주렸다! 18일이 지났다. 우리에게 약속된 몫을 달라!"


서기 아메나크트(Amennakht: 당시 파업의 과정을 기록한 서기)는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파피루스에 기록했다. 

관리들은 당황했다. 

태양신의 아들인 파라오의 영토에서 백성이 집단으로 항의하는 일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관리들은 그들을 달래기 위해 약간의 곡물을 내놓았지만, 그것은 성난 민심에 던진 작은 조약돌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투트모세 3세의 장제전을 점거하고 밤샘 농성에 들어갔다. 

이는 인류 역사상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파업이자 시위였다.


4. 무너지는 '마아트'의 기둥

이 사건이 람세스 3세에게 준 충격은 칼날보다 날카로웠다. 

이집트의 통치 이념인 마아트(Ma'at)는 왕이 백성을 먹여 살리고 질서를 유지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고 외치는 순간, 파라오의 신성은 부정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파업은 며칠간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단순히 배가 고픈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국가 시스템의 부패를 고발했다. 

"관리들이 우리의 곡물을 가로채고 있습니다! 파라오의 창고는 비어 있지 않은데, 왜 우리에게는 오지 않습니까?"


결국 왕실은 굴복했다. 

밀린 임금이 지급되었고, 부패한 관리들에 대한 조사가 약속되었다. 

노동자들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승리의 맛은 씁쓸했다. 

파라오는 깨달았다. 

자신의 군대가 바다 민족은 막아낼 수 있었지만, 굶주린 백성의 절망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5. 보이지 않는 균열, 그리고 음모의 싹

파업은 진압되었지만, 이 사건은 이집트 사회의 근간을 뒤흔든 '전환점'이 되었다. 

백성들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신과 같았던 파라오도 압박하면 양보를 한다는 사실을. 

반대로 왕실 내부의 권력자들은 파라오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음을 간파했다.


람세스 3세는 더욱 고립되었다. 

그는 신전 벽면에 자신의 업적을 더 크게 새기라고 명령하며 현실을 부정하려 했지만, 이미 궁정의 어두운 복도에서는 속삭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파라오가 늙고 약해졌다. 이제 마아트는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테베의 광장에 울려 퍼졌던 "굶주렸다"는 외침은, 이제 궁정 하렘(Harem: 왕실 여인들의 거처)의 은밀한 방 안에서 파라오의 심장을 겨누는 '암살 음모'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위대한 전사의 마지막 불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제4장: 궁정의 그림자 - 파라오 암살 음모

1. 하렘의 밀실, 독사들의 속삭임

테베의 뜨거운 태양도 미치지 못하는 궁전 깊숙한 곳, 하렘은 겉보기에 평화로운 낙원 같았다. 

하지만 그곳의 공기는 습한 지하실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람세스 3세의 통치 말기, 파라오의 건강이 쇠약해지자 다음 왕위를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음모의 중심에는 파라오의 보조 부인 중 한 명인 티예(Tiye)가 있었다. 

그녀는 야심가였다. 

정통 후계자인 왕세자(훗날의 람세스 4세)가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아들 펜타웨레트(Pentaweret)를 보좌에 앉히기로 결심했다.


"늙은 사자는 이제 이빨이 빠졌다. 정해진 순서만 기다리다가는 우리는 평생 그림자로 살다 죽을 것이다."


티예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그녀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궁정의 보이지 않는 손들을 하나둘 포섭하기 시작했다.


2. 거대한 그물: 공모자들의 면면

티예가 던진 미끼에 걸려든 자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이 충격적인 배신의 기록은 훗날 '투리노 사법 파피루스'(Turin Judicial Papyrus)에 고스란히 남게 된다.


공모자들의 명단은 화려하면서도 소름 끼쳤다. 

왕실의 살림을 책임지던 집사 파베카무(Pabekkamen), 파라오의 최측근 내시들, 심지어 군대의 지휘관들까지 가담했다. 

그들은 파라오의 동선을 파악하고, 거사가 일어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특히 이 음모가 기괴했던 점은 '검은 주술'이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파라오의 수호신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밀랍 인형을 만들어 저주를 내리고, 궁정 도서관에서 훔친 금지된 마법 주문서를 외웠다. 

물리적인 칼날뿐만 아니라 신성한 힘까지 빌려 파라오를 확실히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3. 축제의 밤, 그리고 엇갈린 운명

암살단이 거사일로 잡은 날은 테베에서 열린 성대한 축제의 밤이었다. 

파라오가 메디네트 하부 장제전에서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연회를 즐기는 틈을 타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그날 밤, 술과 음악 소리가 궁전을 가득 메웠다. 

경비병들은 느슨해졌고, 공모자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암살자들은 파라오의 침소 근처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진실의 저울은 미묘하게 움직였다. 

음모의 규모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거사 직전, 암살 계획의 일부가 누설되었다. 

람세스 3세는 피습을 당했으나,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는 않았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왕실 근위대가 들이닥치며 공모자들은 현장에서 체포되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4. 피의 재판과 '위대한 죽음'

정신을 차린 람세스 3세는 즉시 특별 재판 위원회를 구성했다. 

12명의 판사가 임명되었고, 이집트 역사상 가장 엄중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은 가혹했다. 

주동자인 집사 파베카무를 비롯한 고위직들에게는 코와 귀를 베어내는 형벌이 내려진 후, 신체관통형(Impalement: 말뚝에 몸을 꿰뚫는 극형)이라는 끔찍한 최후가 선사 되었다. 

파라오의 신성을 모독한 자들에게 내리는 신들의 심판이었다.

심지어 파라오가 임명한 판사들 중 일부가 피고인인 하렘의 여인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정보를 흘리다 적발되어, 그들 또한 코가 잘리는 형벌을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궁정 전체가 이미 부패의 늪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가장 비극적인 처벌은 티예의 아들, 펜타웨레트에게 내려졌다. 

왕족의 피를 직접 흘리는 것을 꺼린 재판부는 그에게 '위대한 죽음'이라 불리는 자결을 명령했다. 

"너는 네 손으로 네 생명을 거두어라. 그것이 왕자로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마아트다."


젊은 왕자는 재판정 뒤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훗날 발견된 '울부짖는 미라'(Unknown Man E)가 바로 그일 것이라는 추측이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다. 

입을 벌린 채 고통스럽게 굳어진 그 미라는 반역의 비참한 결말을 웅변하고 있었다.


Unknown Man E


5. 가라앉지 않는 의문

재판은 끝났고 주모자들은 처단되었다. 

람세스 3세는 표면적으로는 다시 이집트의 주인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궁정의 분위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주모자 중 한 명이었던 후궁 티예의 행방이었다. 

그녀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기록에서 삭제되는 것(Damnatio Memoriae), 즉 이름이 지워져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는 벌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파라오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사람들은 파라오가 암살 시도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믿었지만, 람세스 3세의 눈빛은 이미 저승의 신 아누비스를 향하고 있었다. 

과연 그날 밤, 궁전의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3,000년 동안 잠들었던 그 비밀이 21세기 과학의 손에 의해 밝혀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5장: 비극의 진실 - 과학이 밝혀낸 파라오의 최후

1. 3,000년의 침묵, 붕대에 가려진 비밀

기원전 1155년, 이집트 신왕국의 마지막 거인 람세스 3세가 서거했다. 

공식 기록인 '투리노 사법 파피루스'는 암살 음모자들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기록하며 끝을 맺었다. 

하지만 정작 파라오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묘할 정도로 함구했다.


그의 미라는 테베의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 안치되었다가, 도굴꾼들을 피해 '데이르 엘-바하리'의 비밀 수혈(DB320)로 옮겨졌다. 

1881년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람세스 3세의 미라는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 

당시 학자들은 겉보기에 외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암살 시도는 실패했으나 늙은 파라오가 그 충격으로 얼마 못 가 자연사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파라오의 목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린넨 붕대는 단 한 번도 풀리지 않았다. 

그 붕대 아래, 역사를 뒤바꿀 참혹한 진실이 숨겨져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람세스 3세의 미라


2. 2012년, 현대 과학이 쏜 빛

시간을 건너뛰어 2012년, 이집트 미라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알베르트 징크(Albert Zink)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람세스 3세의 미라를 CT(컴퓨터 단층 촬영) 장비 위에 올렸다. 

3,000년 전의 육신이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어 모니터에 나타났다.


연구진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두꺼운 붕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파라오의 목 부위에서 길이 7cm, 척추뼈까지 닿은 깊은 자상(刺傷)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상처가 아닙니다. 단 한 번의 칼질로 기도와 식도, 그리고 목의 대혈관을 완전히 끊어버린 치명적인 일격입니다."


범인은 뒤에서 접근해 날카로운 칼(Flint knife: 부싯돌 등으로 만든 날카로운 칼)로 파라오의 목을 그었다. 

람세스 3세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자신의 피로 질식하며 쓰러졌을 것이다. 

실패한 줄 알았던 하렘의 음모는 사실 완벽한 성공이었다.


3. 미라 속에 숨겨진 마지막 자비: 호루스의 눈

더욱 놀라운 사실은 상처 안에서 발견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 제작자들은 파라오의 시신을 수습하며 끔찍하게 잘린 목 상처 안에 '호루스의 눈(Wedjat: 보호와 치유의 상징)' 부적을 집어넣었다.


이것은 사후 세계에서만큼은 파라오의 몸이 온전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원이었을까, 아니면 파라오의 비참한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는 왕실의 은폐였을까?


동시에 또 다른 미라, '울부짖는 미라(Unknown Man E)'의 DNA 분석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는 람세스 3세의 친아들임이 증명되었다. 

제대로 된 미라 화 과정도 거치지 못한 채, 부정한 짐승의 가죽인 염소 가죽에 싸여 매장된 청년. 

그는 아버지를 죽인 대가로 영원한 저주를 받으며 죽어갔던 왕자 펜타웨레트였다. 

펜타웨레트로 밝혀진 '울부짖는 미라'의 목에는 밧줄에 의한 압박 흔적이 선명했다. 

그는 자결을 명령받았으나, 실제로는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목이 졸려 죽음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후 세계의 영생을 위해 정성껏 미라화되는 대신, 부정한 동물의 가죽에 싸여 버려진 그의 얼굴은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포로 일그러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비극적인 살인자와 희생자의 관계로 천년의 세월을 나란히 누워있었던 것이다.


울부짖는 미라


4. 무너진 제국의 도미노

람세스 3세의 죽음은 단순히 한 군주의 종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집트 신왕국(New Kingdom)이라는 위대한 시대의 종언이었다.


그의 뒤를 이은 람세스 4세부터 11세까지의 파라오들은 선대왕의 카리스마를 절반도 이어받지 못했다. 

국고는 비었고, 테베의 아문(Amun) 사제들은 파라오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람세스 3세가 바다 민족으로부터 지켜냈던 가나안 땅의 지배권은 완전히 상실되었고, 이집트는 점차 나일강 유역 안에 갇힌 고립된 국가로 전락했다.


역사가들은 말한다. 

람세스 3세는 "이집트가 마지막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시대의 문을 닫고 나간 인물"이라고. 

그가 암살자의 칼에 쓰러지는 순간, 청동기 시대를 찬란하게 수놓았던 이집트의 태양도 서서히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았다.


5. 메디네트 하부에 새겨진 영원

오늘날 테베 서안의 메디네트 하부 신전에 서면, 여전히 전차를 몰며 적들을 짓밟는 강인한 람세스 3세의 부조를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신처럼 영원히 기억되길 원하며 이 거대한 돌기둥들을 세웠다.


비록 그는 가장 믿었던 이들의 배신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가 바다 민족의 파도를 막아내지 못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위대한 전사, 최초의 파업을 겪은 군주, 그리고 암살의 희생자. 

람세스 3세의 삶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영광과 가장 깊은 비극이 교차하는 한 편의 대서사시였다. 

이제 그는 차가운 박물관의 유리관 안에서 평온한 얼굴로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대들의 시대는 무엇으로 무너지고, 무엇으로 지켜지고 있는가?"


이 글은 람세스 3세(람세스 Ⅲ) 시대의 전쟁(리비아·바다 민족), 데이르 엘-메디나 파업, 하렘 음모와 재판 기록(투리노 사법 파피루스 등), 그리고 현대 과학(컴퓨터 단층촬영·유전 분석) 연구에서 제시된 결론을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다만 독자의 몰입을 위해 장면 전개, 심리 묘사, 대화는 소설적으로 재구성했으며, 동일 사건도 연구·해석에 따라 세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After Ramses II’s era, Setnakhte founded the 20th Dynasty and Ramses III inherited a shaken Egypt (c. 1187 BCE). 

He repelled Libyan attacks, then faced the Bronze Age collapse as the Sea Peoples advanced by land and sea. 

Ramses III fortified the Nile Delta, won in Djahi, and destroyed the invading fleet in a Delta ambush of arrows and boarding, memorialized at Medinet Habu. 

Yet war and climate stress emptied stores: delayed rations for Deir el-Medina craftsmen triggered the earliest well-documented strike, revealing corruption and a fraying Ma’at.

In the palace, Queen Tiye backed a coup to enthrone her son Pentaweret. 

Special courts punished conspirators, but CT evidence shows Ramses III’s throat was cut to the spine, implying the plot killed him; “Unknown Man E” is often linked to Pentaweret (debated). 

His death accelerated New Kingdom dec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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