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을 깨물어 왕이 된 임금님? 신라 3대 왕, 유리 이사금 이야기
소개: 신라의 세 번째 왕을 만나볼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라의 세 번째 임금님, 유리 이사금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유리 이사금은 신라 2대 국왕인 남해 차차웅의 아들인데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왕이 되었답니다.
바로 떡을 깨물어서 왕이 되었다는 놀라운 사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 글에서는 유리 이사금이 어떤 왕이었는지, 그의 삶을 대표하는 재미있는 일화 세 가지를 중심으로 함께 탐험해 보겠습니다.
지금부터 지혜롭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유리 이사금의 이야기 속으로 떠나볼까요?
1.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왕 즉위식: "우리, 떡을 깨물어 왕을 정합시다!"
1.1. 겸손한 태자, 유리
아버지 남해 차차웅이 세상을 떠나자, 당연히 태자였던 유리가 왕위를 이어야 했어요.
하지만 유리는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덕망이 높기로 소문난 매부(여동생의 남편) '석탈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 했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라의 미래를 먼저 생각한 것이죠.
유리: "탈해님, 당신은 덕망이 높으시니 마땅히 왕이 되셔야 합니다. 제가 왕위를 양보하겠습니다."
탈해: "아닙니다, 태자님. 왕의 자리는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듣자 하니,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 떡을 깨물어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1.2. 떡 자국으로 왕이 되다
탈해의 신기한 제안에 따라 두 사람은 떡을 힘껏 깨물어 잇자국(잇금)을 비교했어요.
놀랍게도 유리의 잇자국이 탈해보다 더 많았답니다!
이를 본 신하들은 "하늘의 뜻입니다!"라며 유리를 왕으로 모셨습니다.
이 특별한 사건 때문에 왕의 칭호에 새로운 이름이 붙게 되었어요.
바로 '잇금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사금(尼師今) 이라는 칭호입니다.
이 칭호는 유리 이사금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신라 사람들은 '이가 많다'는 것을 '나이가 많아 지혜롭고 경험이 풍부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해요.
즉, 단순히 이가 많은 사람을 뽑은 것이 아니라, 나라를 이끌 지혜로운 연장자를 존중하는 신라 초기의 독특한 문화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이 떡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죠?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여기에 더 깊은 뜻이 숨어있다고 생각해요.
신라의 학자 김대문은 '이사금'이라는 칭호가 단순히 잇자국이 아니라, '나이가 많은 어른'이 왕이 되는 신라의 중요한 규칙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어요.
즉, 아버지인 남해 차차웅이 '박씨와 석씨 중에서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왕이 되어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 원칙을 존중해서 왕을 정했다는 것이죠.
떡을 깨문 것은 이 '나이와 지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험이었던 셈이에요.
왕의 자리를 힘이 아닌 지혜로 정한 이 놀라운 이야기는, 신라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혜를 인정받아 왕이 된 유리 이사금은 과연 그 지혜를 어떻게 사용했을까요?
그의 따뜻한 마음이 온 나라를 감싸 안은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2. 백성을 사랑한 따뜻한 마음
2.1. 굶주린 할머니를 만난 왕
어느 추운 겨울날, 유리 이사금은 백성들의 삶을 살피기 위해 나라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길 위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쓰러져 죽어가는 한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유리 이사금은 너무나 가슴 아파하며 자신의 옷을 벗어 할머니를 덮어주고, 음식을 나누어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리 이사금: "내가 부족한 몸으로 왕이 되어 백성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했구나. 노인과 아이들이 이토록 고통받게 하였으니, 이 모두가 나의 죄이다."
왕은 백성의 고통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깊이 슬퍼했습니다.
2.2. 신라 최초의 복지 정책
이 일을 겪은 후, 유리 이사금은 곧바로 관리들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신라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복지 정책'으로 평가받는답니다.
• 전국적인 구휼 명령: 관리들에게 명하여 나라 곳곳의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 등 혼자 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위문하고 양식을 나누어 주게 했습니다.
• 따뜻한 소문의 효과: 유리 이사금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정책은 이웃 나라까지 소문이 퍼져, 많은 백성이 "신라로 가면 굶지 않는다"며 이주해 왔습니다.
• 백성들의 노래, '도솔가': 백성들의 생활이 즐겁고 편안해지자, 사람들은 기쁜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어요. 이것이 바로 신라 최초의 노래로 알려진 '도솔가(兜率歌)' 입니다.
백성의 굶주림을 '나의 죄'라고 말할 수 있는 왕의 진심 어린 마음이야말로, 신라를 가장 튼튼하게 만든 진정한 힘이었습니다.
백성들의 배가 부르고 마음이 편안해지자, 유리 이사금은 이제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날 특별한 선물을 준비합니다.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즐거운 축제의 시작이었죠!
3. 추석의 시작, "가배"를 열다!
3.1. 흥미진진 길쌈 대회
유리 이사금은 백성들의 화합과 즐거움을 위해 아주 특별한 대회를 열었어요.
바로 수도의 여자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길쌈(베 짜기) 실력을 겨루는 '가배(嘉俳)' 라는 축제입니다.
1. 팀 구성: 왕의 두 딸이 각각 팀의 주장이 되어 수도의 여자들을 두 편으로 나눴습니다.
2. 대회 기간: 가을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약 한 달간 진행되었습니다.
3. 대회 내용: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베를 짜며 실력을 겨뤘습니다.
4. 결과 발표 및 축제: 8월 15일, 그동안 짠 길쌈의 양을 비교하여 승패를 가르고, 진 편에서 이긴 편에게 맛있는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다 함께 노래와 춤을 즐기는 큰 축제를 벌였습니다.
3.2. '회소곡'과 오늘날의 추석
이 축제에서 진 편의 한 여자가 아쉬운 마음에 "회소, 회소!"라고 탄식하며 춤을 추었다고 해요.
그 노랫소리가 아름다워서 훗날 '회소곡(會蘇曲)' 이라는 노래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 '가배'가 오늘날 우리가 매년 풍성하게 보내는 민족 대명절, '추석' 의 기원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뒤, 다 함께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즐겁게 어울렸던 신라 시대의 축제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매년 즐겁게 보내는 추석은 바로 유리 이사금이 백성들의 화합과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가배'에서 유래한 소중한 전통입니다.
이렇게 백성들의 삶을 위한 정책과 즐거운 축제를 만든 유리 이사금은, 나라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중요한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4. 신라의 기틀을 다지다
유리 이사금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비하여 신라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튼튼한 기초를 닦은 왕이기도 합니다.
당시 신라는 6개의 강력한 부족이 함께 세운 나라였는데, 유리 이사금은 이 부족들에게 새로운 이름과 성씨를 내려주어 하나의 국가라는 소속감을 높이고 중앙 정부의 힘을 키웠습니다.
그의 주요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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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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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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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六部) 개편 및 성씨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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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기본이 되는 6개 부족의 이름을 바꾸고, 이(李), 최(崔),
손(孫), 정(鄭), 배(裵), 설(薛) 씨 성을 내려주어 국가 체계를
정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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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관등제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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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벌찬부터 조위까지 총 17등급의 관직 체계를 만들어 나라의 행정
시스템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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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금의 릉이라 추정되는 경주 오릉 |
지혜롭고 너그러웠던 왕
떡을 깨물어 왕이 된 독특한 이야기의 주인공, 유리 이사금.
그는 굶주린 백성을 위해 자신의 옷을 벗어주었던 따뜻한 마음, 오늘날 추석의 기원이 된 '가배' 축제를 열어 백성들과 기쁨을 나누었던 지혜, 그리고 6부 개편과 17관등제를 통해 나라의 기틀을 다진 리더십을 모두 갖춘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두 아들보다 사위인 탈해(바로 그의 여동생과 결혼한 매부였죠)의 재능이 더 뛰어나다며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는 끝까지 개인의 욕심보다 나라의 미래를 먼저 생각했던 그의 현명하고 너그러운 성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유리 이사금은 신라 초기의 역사를 빛낸, 진정으로 백성을 위했던 왕으로 우리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기본 사료와 한국 고대사 연구를 바탕으로, 신라 제3대 유리 이사금의 일화를 어린·일반 독자분들도 이해하시기 쉽도록 풀어 쓴 글입니다.
떡을 깨물어 왕을 정한 즉위 이야기, 굶주린 노인을 구휼한 일과 초기 복지 정책, 도솔가와 가배(추석)의 기원, 6부 개편과 17관등제 정비 등은 사료에 근거하고 있으나, 대화와 감정 묘사, 구체적인 장면 전개 일부는 서사의 몰입을 돕기 위한 소설적 재구성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엄밀한 학술 논문이나 연대기라기보다는, 유리 이사금과 신라 초기 사회를 입체적으로 상상해 보시기 위한 ‘스토리형 해설’에 가깝습니다.
더 자세한 연대·용어·사건 검증이 필요하신 분께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삼국유사》 및 관련 한국사 연구 논문을 함께 참고해 주시기를 권합니다.
This article retells the legend of Yuri Isageum, Silla’s 3rd king, chosen by a “rice-cake biting” test over his brother-in-law Talhae.
It follows his compassion for the starving, early relief policies and Dosolga, his Gabae weaving festival that became Chuseok, his reforms of the six clans and 17-rank system, and his final decision to yield the throne to Tal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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