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토와 토고, 1925년 놈을 구한 개썰매 혈청 작전의 위대한 경주 이야기 (Great Race of Mercy)


얼어붙은 땅을 가로지른 위대한 자비의 경주: 1925년 놈의 영웅들


고립된 도시, 놈(Nome)의 겨울

1925년, 알래스카의 놈(Nome)은 혹독한 겨울 속에 고립된 도시였습니다. 

북극권에서 남쪽으로 약 2도 떨어진 이 도시는 금광 시대의 활기가 사라진 후, 알래스카 원주민 455명과 유럽계 정착민 975명이 살아가는 조용한 곳이었죠. 

하지만 놈의 겨울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11월부터 다음 해 7월까지, 항구는 두꺼운 얼음에 갇혀 외부 세계와의 모든 해상 교류가 끊겼습니다.

이 기나긴 고립의 시간 동안, 놈과 바깥세상을 잇는 유일한 생명선은 938마일(약 1,510km)에 달하는 아이디타로드 트레일(Iditarod Trail)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길 위를 달리는 개썰매만이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놈의 유일한 의사는 곧 끔찍한 악몽이 현실이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1. 절망의 그림자: 디프테리아의 발병

이야기는 1924년 겨울, 놈의 유일한 의사인 커티스 웰치(Curtis Welch) 박사가 마을 병원의 디프테리아 항독소 전부가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인후염이나 편도선염과 비슷한 증상을 보였지만, 웰치 박사는 전염성이 강한 디프테리아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1916년 노움의 풍경


하지만 곧 아이들이 하나둘씩 사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목감기가 아니었습니다. 

1925년 1월 중순, 세 살배기 아이가 전형적인 디프테리아 증상을 보이다 사망하자 웰치 박사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불과 몇 년 전인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 당시 놈 지역 원주민 인구의 50%, 알래스카 전체 원주민의 8%가 사망했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는 전염병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조지 메이나드(George Maynard) 시장과 함께 긴급 시의회를 소집했습니다.


웰치 박사: "이건 단순한 목감기가 아니야. 디프테리아가 틀림없어! 벌써 아이 넷이 죽었네. 항독소 없이는 전염병을 막을 수 없어!"

메이나드 시장: "맙소사, 항독소는 전부 유통기한이 지났지 않소. 봄까지 배가 들어오려면 몇 달은 남았는데... 워싱턴에 긴급 전문을 보내야겠네!"


도시 전체에 격리 조치가 내려졌고, 웰치 박사는 워싱턴 D.C.의 미국 공중보건국에 다급한 전보를 보냈습니다.

"디프테리아 전염병이 거의 확실함. 백만 단위의 디프테리아 항독소 시급히 필요함. 유일한 운송 수단은 우편물임. 이미 보건국장에게 항독소 요청했음. 이 지역에 약 3000명의 백인과 원주민이 있음."

항독소가 없다면, 면역력이 없는 원주민을 포함한 약 1만 명에 달하는 지역 인구의 사망률이 100%에 육박할 수 있다는 끔찍한 예측이 나왔습니다. 

놈은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였습니다.


2. 단 하나의 희망: 비행기인가, 개썰매인가

보건 위원회 회의에서 두 가지 해결책이 제시되었습니다. 

하나는 당시로서는 신기술이었던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이지만 확실한 방법인 개썰매 릴레이였습니다.


제안
장점
단점
비행기 수송
잠재적으로 더 빠름
당시 비행기는 구식 기술(개방형 조종석, 수랭식 엔진). 영하 50도의 혹한과 강풍에 비행 불가. 알래스카 겨울 비행 경험 전무.
개썰매 릴레이
검증된 운송 수단
네나나에서 놈까지 674마일(1,085km)의 장거리. 혈청의 유효기간(6일) 내 도착 불확실.


결정은 만장일치였습니다. 

위험하지만 검증된 방식, 개썰매 릴레이가 채택되었습니다. 

이 중차대한 임무를 위해, 알래스카 최고의 썰매꾼으로 칭송받던 레온하르드 셉팔라(Leonhard Seppala)와 그의 전설적인 리더견 토고(Togo)가 가장 험난한 구간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마침 앵커리지의 한 병원에서 잊혀졌던 항독소 30만 단위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귀중한 혈청은 즉시 기차에 실려 개썰매 릴레이의 첫 출발지인 네나나(Nenana)로 긴급히 운송되었습니다. 

위대한 여정이 시작될 준비가 되었습니다.


3. 영하 50도, 죽음의 경주 시작

1925년 1월 27일 밤 9시, 첫 주자 '와일드 빌' 섀넌("Wild Bill" Shannon)이 네나나 기차역에서 혈청 꾸러미를 건네받았습니다. 

바깥의 기온은 영하 50도(-46°C). 

섀넌은 주저 없이 어둠 속으로 출발했습니다.

날씨는 최악이었습니다. 

기온은 영하 62도(-52°C)까지 떨어졌고, 강풍이 몰아쳤습니다. 

트레일은 파괴되어 위험한 강 얼음 위를 달려야 했습니다. 

섀넌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썰매 옆에서 쉬지 않고 뛰었지만, 살을 에는 추위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심각한 저체온증과 동상으로 얼굴 일부가 검게 변해갔습니다. 

경험 없는 그의 개들은 혹한을 견디지 못했고, 최소 세 마리의 개가 목숨을 잃었으며 네 번째 개 역시 얼마 못 가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섀넌(숨을 헐떡이며): "멈출 수 없어... 멈추면 우리 모두 얼어 죽는다. 가자, 얘들아! 조금만 더!"

섀넌은 거의 초죽음이 된 상태로 다음 주자인 에드거 칼란드(Edgar Kalland)에게 혈청을 전달했습니다. 

이 경주는 단순한 배달이 아닌, 목숨을 건 사투였습니다.


4. 폭풍 속을 달리는 영웅들

4.1. 이름 없는 영웅들의 헌신

경주가 이어지면서 수많은 썰매꾼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체 거리의 3분의 2를 달린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Athabaskan, Inupiat) 출신 썰매꾼들이었지만, 당시 언론은 이들의 헌신을 거의 조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경주의 가혹함은 찰리 에반스(Charlie Evans)의 일화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얼음 안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리더견들에게 의존해 달렸습니다. 

하지만 짧은 털을 가진 두 리더견의 사타구니를 토끼 가죽으로 보호하는 것을 잊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개들은 심한 동상으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결국 에반스는 개들 대신 직접 썰매를 끌어야 했습니다.


4.2. 전설의 등장: 셉팔라와 토고

경주의 가장 위험하고 결정적인 구간은 레온하르드 셉팔라와 그의 12살 리더견 토고의 몫이었습니다.

셉팔라는 다가오는 거대한 폭풍을 뚫고 릴레이 팀을 만나기 위해 놈에서부터 170마일(270km)을 달려왔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헨리 이바노프(Henry Ivanoff)와 마주쳤습니다. 

하마터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뻔한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바노프(숨가쁘게 외치며): "셉팔라! 멈춰요! 혈청! 혈청이 여기 있소!"

혈청을 건네받은 셉팔라는 이제 놈을 향해 91마일(146km)을 더 달려야 했습니다. 

총 261마일에 달하는 대장정이었죠. 

그는 엄청난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체감온도가 영하 85도(-65°C)에 달하는 살인적인 추위와 어둠 속에서, 지름길인 노턴 사운드(Norton Sound)의 불안정한 얼음 위를 건너기로 한 것입니다. 

그곳은 바람에 의해 광택이 난 미끄러운 '유리 얼음'과 서로 부딪혀 깨진 얼음들이 만든 거친 언덕들로 가득한 위험천만한 곳이었습니다. 

토고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놀라운 본능으로 팀을 이끌며, 언제 깨져서 얼어붙은 물속으로 팀을 빠뜨릴지 모르는 위험한 구간들을 기적적으로 피해 길을 찾아냈습니다.


5. 마지막 주자, 그리고 영광의 도착

셉팔라로부터 혈청을 건네받은 찰리 올슨(Charlie Olsen) 역시 눈보라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심한 동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혈청은 마지막 주요 주자인 군나르 카센(Gunnar Kaasen)과 그의 리더견 발토(Balto)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팀의 선두견 발토 와 함께 있는 군나르 카센


카센의 여정은 끔찍했습니다.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눈보라 속에서 달리던 중 강풍에 썰매가 뒤집혔습니다. 

혈청 꾸러미가 눈 속에 파묻혔고, 카센은 장갑을 벗은 맨손으로 필사적으로 눈을 헤쳐 혈청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 대가로 그의 손은 심한 동상에 걸렸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교대 지점인 포인트 세이프티(Point Safety)에 도착했지만, 다음 주자인 에드 론(Ed Rohn)은 폭풍이 너무 심해 경주가 솔로몬에서 중단되었을 것이라 믿고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카센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은 25마일(40km)을 직접 달려 놈까지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1925년 2월 2일 새벽 5시 30분, 마침내 군나르 카센과 발토가 지친 몸을 이끌고 놈의 프론트 스트리트에 도착했습니다. 

674마일(1,085km)의 거리를 127.5시간 만에 주파한, 기적과도 같은 대장정이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1925년 혈청 투여 당시의 경로는 녹색으로 표시


6. 경주가 남긴 유산

6.1. 스포트라이트와 그림자: 발토와 토고

경주가 끝나자, 마지막 주자였던 군나르 카센과 발토는 전국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미국 전역을 순회했고, 뉴욕 센트럴 파크에는 발토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 있는 발토의 동상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진짜 영웅은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발토의 주인이기도 했던 셉팔라는 발토를 여정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발토를 그저 "짐이나 끄는 평범한 개(scrub freight dog)"로 여겨 뒤에 남겨두었죠. 

객관적인 기록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분
레온하르드 셉팔라 & 토고
군나르 카센 & 발토
달린 거리
261마일 (420km) (혈청 소지 후 91마일)
55마일 (89km)
구간 난이도
가장 위험하고 험난한 구간 (노턴 사운드 횡단 포함)
마지막 비교적 평이한 구간
주요 활약
폭풍 속에서 깨지는 얼음 위를 건너며 팀 전체를 구함
심한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팀을 이끌었음


셉팔라는 평생 진짜 영웅은 토고였다고 말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1960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토고보다 더 좋은 개는 없었다."


1925년 혈청 실험 후 레온하르트 세팔라 와 그의 개들. 토고는 맨 왼쪽


6.2. 위대한 경주가 바꾼 미래

이 사건은 알래스카와 미국 사회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1. 항공 우편 시대의 개막: 이 경주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더 빠르고 안정적인 운송 수단의 필요성을 부각시켰습니다. 

이는 1925년 항공우편법(Air Mail Act) 제정을 촉진했고, 10년 안에 알래스카에 항공로가 개설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아이디타로드 경주의 탄생: 1925년의 영웅적인 여정은 훗날 "지구상의 마지막 위대한 경주"라 불리는 '아이디타로드 트레일 개썰매 경주'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대회는 매년 3월, 썰매꾼들과 개들의 불굴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열리고 있습니다.

3. 전염병 예방의 중요성: 이 사건은 전 세계에 디프테리아의 위험성과 예방 접종의 중요성을 알리는 강력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대규모 예방 접종 캠페인이 확산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25년의 위대한 경주는 단순한 혈청 전달 작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 피어난 인간과 동물의 숭고한 협력, 용기, 그리고 희생에 대한 위대한 서사시였습니다.


1925년 신문기사


잊히지 않을 영웅들의 정신

20명의 썰매꾼과 150마리가 넘는 개들의 희생과 용기는 놈의 수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들의 "불굴의 정신(indomitable spirit)"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 협력하며 헌신할 때 얼마나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원한 증거로 남아있습니다.


이 글은 1925년 알래스카 놈(Nome)의 디프테리아 항독소 운반 사건을 바탕으로, 여러 1차·2차 기록에서 전해지는 사실 관계를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일부 장면과 대사, 인물의 심리를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실제 인물·지명·연대는 확인 가능한 사료를 기준으로 정리했으나, 세부 대화와 감정선, 일부 묘사는 극적 이해를 돕기 위한 각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다 엄밀한 역사 연구를 위해서는 당시 신문 기사, 의료·행정 보고서, 관련 사료와 최신 연구 논문을 함께 참고하시길 권합니다.


In 1925, an outbreak of diphtheria threatened the isolated town of Nome, Alaska. 

With ships blocked by ice and planes unusable, twenty mushers and over 150 sled dogs relayed antitoxin 674 miles through Arctic storms. 

Led by teams like Seppala and Togo, and finished by Kaasen and Balto, they saved countless lives and inspired later vaccination, aviation, and the Iditarod 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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